Ivo Van Hove, Antigone, 2015 (photo_ Jan Versweyveld)

Ivo Van Hove, Antigone, 2015 (photo_ Jan Versweyveld)

2014년 7월 17일, 암스테르담을 떠나 쿠알라 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폭격으로 추락했다. 그 후 일주일이 넘도록 시신들은 황야에 방치되었고, 무자비한 태양 아래 썩어갔다. 죽은 이를 애도할 수 없음은 야만이라고, 썩지 않은 시신에 눈물을 뿌리지 못한 이들이 울부짖었다. 모든 수습이 끝난 후 네델란드 정부는 망자들을 향한 경외를 표하고자 시신들을 태운 영구차의 긴 행렬이 온 나라를 돌아 일백 킬로미터의 도정을 떠나도록 했다. 떠난 자에 대하여, 그의 죽음에 대하여 경외를 갖는 일. 네델란드 연출가 Ivo Van Hove는 그렇게 그의 안티고네를 만났다.

언젠가 내가 죽으면 나는 오빠의 시신 옆에 누울 거야. 우리는 오래도록 그렇게 함께 누워있을거야. 삶은 끝나지만 죽음은 영원해. 유한한 삶과 인간의 법이 두려워 영원한 죽음에 경외를 표하지 않을 순 없어. 죽은 자를 인사하여 보내는 것, 그것은 신의 뜻이야.

조국의 반역자인 폴리네이케스를 매장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하도록 금한 크레온의 명을 어기고, 안티고네는 신의 뜻을 따라 오빠의 피묻은 몸을 묻는다. 기도하듯 중얼거리며 물을 뿌리고, 흙을 바르고, 들꽃을 놓는다. 사막의 장례에 석양빛이 어린다. 먼 곳에서부터 모래 바람이 인다. 저주받은 아버지, 어머니, 오빠. 그녀는 그들을 부디 불쌍히 여겨달라 외친다. 목숨을 바친 저 연민(pitié)은 그러나 미천한 인간의 세계에서는 한낱 불경함(impiété)일 뿐이다.

“On qualifie ma pitié d’impiété.”

하여 죽음에마저 귀천을 나누고, 선악을 나누고, 각양 담론의 그림자만 드리우느라 우리는, 경외하지 못하고 애도하지 못하고 불쌍히 여기지도 못한 채 이렇게 왔다. 제때에 뿌리지 못한 눈물들이 쌓인다. 너와 나의 몸들이 그 속에 잠겨간다. 안티고네. 사막 같은 바람을 불어 다오. 끝내 산 채로 매장당한 네 몸이 신께로 넘겨졌을 때, 그곳은 너의 신방이었고, 배를 덮은 희고 커다란 구멍이 자궁처럼 빛나고 있었지.

때로 어떤 공연이 비판할 새 없는 슬픔 속으로 나를 젖어들게 할 때, 나는 연극이 참 좋다. 단 한 순간이어도 좋다. 어쩌면 가장 진실한 그 한 순간만을 기다리며 산다. 그 순간들이 나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동시에, 죽음을 경외할 힘도 주는 까닭이다. 안티고네. 생의 밑바닥을 어루만지는 이름.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러, 그래 우리는 왔다.

“Je suis née pour partager l’amour et non la h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