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우리는 아직 연극에 남아

배삼식의 각색 에 관하여 (2022.8) “죽음, 죽음… 죽음이 죽음을 부르니, 천지사방에 온통 죽음뿐이로구나.”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가 영국 왕에게 보낸 밀서의 존재를 모른다. 그는 죽은 남편의 슬픔과 아들의…

의미보다 간절한 몸들의 편력

서한겸 ‘많은 여행과 큰 외로움’ 전시 서문 (2017.10.10-10.17) 얼마 전 가수 요조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 라는 긴 제목의 단편영화 형식으로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을 사서 노래를…

고독의 질감

이민휘 1집 ‘빌린 입’ 을 듣고 실은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려 했었다. 그녀가 언젠가의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침묵의 빛’ 을 썼다 했듯이. 거기, 구름 위에서, 무릇…

일상의 풍경에 픽션이 틈탈 때

정진세 작가의 “올모스트” 시리즈에 대한 고찰 통상적으로 미술이나 연극에 있어 ‘장소특정적(site-specific)’이라는 수식어는 그 설치나 공연이 특수한 한 지점으로서의 장소를 점유할 때 따라붙는다. 가령 나치시대 대학살이 일어난 어느 병동이라든지…

섹스와 자위 사이

정금형, 7 ways, Festival Màntica 2013 볼로냐(Bologna)의 미술학도 출신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는 이탈리아 공연계에서 일찍이 환대 받지 못했다. 오히려 프랑스를 필두로 한 여타의 유럽 국가들이 그를 먼저 알아보고…

이토록 짠한 뻘짓의 향연

Vivarium Studio, SWAMP CLUB, Festival d’Avignon, 2013.7 (Photo_Christophe Raynaud de Lage) 이제는 극단 체제가 거의 소멸돼 버린 프랑스 연극계의 한구석에서 꾸역꾸역 제 길을 모색하다 어느덧 창단 10주년을 맞은…

사람의 존재, 육체의 현존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도쿄데쓰락, 세 사람 있어!, 혜화동 1번지, 2012.10 지난 10월,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되었던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의 한 장면이다. (내용상으로는 두 사람의 대화이나 이를 세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재룡 :…

무릎 위에 놓인 욕망

극단 성북동비둘기, 헤다 가블러,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2012.10-2012.12 산부인과 의자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본 기억은 많은 여자들에게 생생한 감각으로 새겨진다. 임신이나 출산, 낙태와 아무런 관련 없이도 한 여자가 그 의자에…

오직 관객에게 바쳐진 바다

제12회 포항바다국제공연예술제 2012.8 바다는 한적했다. 맞은편 육지에 우뚝 솟은 거대한 공장 단지가 보였다. 조금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2012년 8월, 말복과 입추가 겹쳤던 그 날 저녁에, 포항 북부해수욕장은 몸매를 뽐내며…

일상지하(日常地下), 일상지하(日常之下)

성북동비둘기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공간리뷰 카페 일상의 지하에 위치한 실험극장 일상은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습장이자 공연장으로 활용되지만 사실은 키 낮은 콘크리트 천장과 기둥, 시멘트 바닥이 그대로 노출된 지하실에 가깝다. 무대와…

펑크라는 이름의 청춘

더아웅다웅스, 북조선 펑크 록커 리성웅, 아트선재센터, 2012.3-2012.4 2011년 페스티벌 봄에는 한스-페터 리처(Hans-Peter Litscher)의 라는 작품이 있었다. 종로구 원서동 좁은 언덕길, 박잉란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작가는 그가 자던 방, 소중하게…

경계에 선 하녀들

극단 성북동비둘기, 하녀들,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2011.9-2011.10 연극이라는 것은 무릇 실제 자체와는 다른 것이기에 다소간의 과장을 언제나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과장이나 왜곡의 정도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가령 어떤…

삶을 지속시키는 진동

Festival d’Avignon 2011 젊은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를 협력 예술가로 내세운 2011 아비뇽 페스티벌은 그 때문인지 예년에 비해 무용 공연을 큰 비중으로 다루었다. 이는 음악가 출신 연출가 크리스토프…

코뿔소 되기, 혹은 되지 않기의 어려움

한불합작공연 코뿔소 공연 보고서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09~1994)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9년, 한국에서도 그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소위…

죄 없는 눈처럼, 오고 가는 빛그늘

국립극단, 3월의 눈, 백성희장민호극장, 2011.3 눈이라는 것은 본디 죄 없음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주홍빛 같은 죄가 십자가의 대속으로 흰 눈보다 더 희게 되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눈의 죄 없음은 그것의…

다시 연극이라는 미디어에 대하여

극단 성북동비둘기, 메디아 온 미디어,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2011.3 이따금 고전 비극의 대사들을 되새겨 보노라면,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넘어 여전히 우리를 강렬하게 건드리는 그 말들의 힘 앞에 모종의…

혈관 속을 흐르는, 꽃이 되는 이름

극단 성북동비둘기, 혈맥, 연극실험실 일상지하, 2011.1 1947년과 2011년, 공교롭게도 같은 성북동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지하/땅굴이며, 공교롭게도 같이 흘러가는 처지. 그렇다면 원작과 이번 연극 사이의 차별성은 고작 시간적인 차원에서밖에 나타나지…

아비뇽의 여름, 그 황홀한 뒤섞임

Festival d’Avignon 2010 아비뇽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황청이 갖는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그 곳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장소이자, 여타의 의미들을 뛰어넘어 다만 그 육중함으로 현존하는 신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막 같은 그들의 아픔 – 고아뮤즈들

극단 프랑코포니/게릴라극장, 고아뮤즈들, 게릴라극장, 2010.2-2010.3 이미지와 서사 ― 드라마의 귀환 ‘텍스트에서 무대로’의 연극적 전환은 20세기 초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단하게 진행되어 온 커다란 흐름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란 것에…

허깨비 같은 무대와 인생에 대하여

극단 동, 비밀경찰,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0.1 연극 자체로서의 연극 한 지면을 통해 연출가가 밝혔던 바와 같이, 이번 극단 동의 은 명백히 원작인 고골리의 보다는 메이어홀드의 그것에 더 가까운…

인생의 효과 – 세르쥬의 효과

비바리엄 스튜디오, 세르쥬의 효과, 명동예술극장, 2009.11 지난 11월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비바리엄 스튜디오의 연극 는 사실상 매우 교묘한 메타 연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숫기 없고 독특한 성격의 세르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