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합작공연 코뿔소 공연 보고서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09~1994) 탄생 100주년을 맞은 지난 2009년, 한국에서도 그의 연극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소위 ‘부조리극’이라는 용어로 (잘못) 통칭되는 베케트나 이오네스코 류 작품을 향한 한국 관객들의 뜻 모를 지지는 어김없이 힘을 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해하고 심오하기만 한’ 어떤 것이 아닌, 진중하면서도 매우 유쾌하게 우리의 ‘지금, 여기’를 꼬집어내는 그 생생함을 만나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아마도 부조리라는 말에 괜스레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는 한국적 이해 방식의 탓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다 자유롭고 유쾌한 프랑스식 사고를 접목시켜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008년부터 구상되어 2010년과 2011년 아비뇽, 안산, 서울 그리고 다시 아비뇽에서 총 네 차례 공연된 한불공동제작 연극 <코뿔소(Rhinocéros)>는 이처럼 ‘서로 다른 이해 방식의 결합 및 소통’을 근간으로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것은 소통상의 어려움이나 몰이해가 발생할 때마다 수많은 난점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매우 지난한 작업이기도 했다. 사람이 코뿔소로 변하는 것, 또는 변하지 않고 사람으로 남는 것은 각자의 일생의 시간만큼이나 깊은 저마다의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주불한국문화원의 최준호 원장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의 김철리 예술 감독에게 이듬해 이오네스코의 작품으로 한불공동제작 연극을 만들어볼 것을 제안하였다. 연극 분야에서 국제 공동 작업을 진행해온 경험이 전무했던 SPAF로서는 망설여지는 제안이었으나, 그를 설득하기 위해 최준호 원장은 다음과 같은 설명들을 덧붙였다. 첫째, SPAF의 국제적인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단지 해마다 해외 작품들을 초청하는 것 외에, 보다 실천적인 국제 작업을 통해 그 축제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을 스스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둘째, 아비뇽 Off 축제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히고 있는 할 극장(Théâtre des Halles)의 연출가 알랭 티마르(Alain Timar)와 작업을 진행할 경우, 서울 축제에서만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비뇽에서도 장기간 공연하여 쌍방향적인 소통과 반응을 두루 경험해볼 수 있다. 그러나 SPAF 측의 현실적 어려움과 고사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끝내 이오네스코의 탄생 100주년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 말경부터, 2010년의 아비뇽 축제와 SPAF를 목표로 <코뿔소> 프로젝트는 진지하게 다시 착수되기 시작한다.

사실상 <코뿔소>라는 작품을 공연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미 2008년 최준호 원장과 연출가 알랭 티마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오네스코의 많은 작품들을 펼쳐놓고 고르던 중에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코뿔소>라는 작품에 눈길이 갔다. 인물들이 하나 둘 코뿔소로 변해가는 그 이야기가, 파시즘을 겨냥하고 쓰여졌던 그 시대를 지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또 어떤 의미와 반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두 사람은 통상적으로 한국에서 국제 공동 작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해졌던, 외국 연출가의 기존 연출작을 그대로 가져와 배우만 국내 배우로 바꿔서 올리는 종류의 작업이 너무도 무용하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들은 알랭 티마르가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한국의 배우들과 한국 사회를 직접 만난 뒤에, 그들 가운데서 그들에 걸맞은 공연을 그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2009년 겨울 서울을 찾은 연출가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직접 배우들을 뽑았고, 2010년 봄 다시 서울에서 그 배우들과 함께 연습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문제없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설혹 그런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그 배후에는 이미 수많은 문제적 요소들이 지뢰처럼 깔려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공동 제작 과정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재정 분배 문제’였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SPAF와 할 극장, 그리고 둘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동참하게 된 주불한국문화원까지, 세 기관은 어떤 부분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으로 불필요한 시간과 수고를 너무 많이 빼앗겨 버렸다. 더군다나 그들은 재정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작품 자체와 연관한 부분들을 크게 놓치고 말았다. 요컨대 작품 제작과 실제로 참여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기본적인 배려 및 작업 환경 제공에 있어 미흡한 대응을 하고 만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SPAF의 경험 부족도 한 몫을 했다. 알랭 티마르가 연습을 위해 다시 서울로 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아홉 명의 배우와 한 명의 음악감독, 그리고 통역가 뿐이었다. 연출가를 보조해줄 만한, 또는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 공동 작업을 조율해줄 만한 그 어떤 역할도 부재하였다. 그리하여 조연출도 드라마투르그도 무대감독도 없이, 준비된 텍스트도 없이, <코뿔소>의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알랭 티마르와 서울 측 사이에서도 다소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SPAF나 배우들은 연출가가 한국으로 올 때, 연습을 당장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각색된 텍스트를 준비해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연출가에게 있어서는 텍스트를 구비하는 것 자체가 연습 과정에 포함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코뿔소>의 기본적인 미장센, 즉 익명의 현대 사회 대기업을 배경으로 하고, 미니멀한 오브제인 큐브와 패널을 사용하되 패널을 돌리면 거울이 되어 관객을 비추도록 하겠다는 기본적인 구상은 알랭 티마르와 최준호 원장이 처음 면담했던 당시에 대체로 결정되었던 차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추상적인 미장센을 위해서는 원작 텍스트를 상당 부분 축소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연출가는 그 작업을 배우들과 함께 진행하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고, 배우들의 경우는 밑바닥에서부터 함께 시작하기보다 연출가가 어느 정도 구축해 놓은 기반 위에서 실제적인 연기 연습을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랐다. 게다가 텍스트 구성 작업을 도울 만한 드라마투르그나 조연출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그들의 더딘 작업 위에 계속해서 드리워졌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 즉 통역의 문제가 더해진다. 주지하듯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동 작업에 있어 통역이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다. 그리고 그것은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구멍이다. 사실상 일상에서 우리가 하나의 언어만으로 직접적인 대화를 주고받을 때조차 소통의 문제는 무수히 발생한다. 그러므로 통역이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말이 비틀리고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더해지는 답답함과 갈증이란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특별히 이 공연처럼 백지 상태에서부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경우에는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구체적인 미장센의 디테일이나 캐릭터에 대한 꼼꼼한 사전 이해 없이 처음부터 부딪혀보고자 하는 외국인 연출가의 작업 방식, 그리고 그 작업 스타일을 무색케 하는 소통상의 어려움. 그것들을 견디고 함께 헤쳐 나가 보기에는 안타깝게도 언어의 장벽을 사이에 둔 배우들과 연출가 사이가 너무 멀었다. 연습 기간 내내 배우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납득시켜 달라며 설명을 요구했고, 그에 따른 설명이 언어의 변형을 거쳐 힘겹게 제공되었으나 끝내 그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적이 많았다. 그리고 물론 여기서는 언어 뿐 아니라, 근본적인 문화적 차이까지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일례를 들어보자면, 원작에는 마을 한 복판에 코뿔소가 나타난 뒤 한 명의 논리학자가 나와서 방금 지나간 코뿔소의 뿔 개수나 출신지 등에 관해 논리를 펼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알랭 티마르 연출의 <코뿔소>에서는 우선 코뿔소가 실제로 등장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이 코뿔소를 목격하는 장소도 한가로운 마을 어귀가 아니다. 대신 사무실에서 일에 몰두하던 검은 정장 차림의 직원들이 불현듯 객석을 바라보며 코뿔소가 나타났다고 소스라치는 것이다. 그랬다가 이내 그들은 모두 여러 명의 논리학자로 변모하여 코뿔소의 뿔에 대해 폭력적인 논쟁을 펼치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익명의 얼굴들로 돌아와 사무실을 유유히 떠나버린다. 이는 원작에서처럼,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논리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코뿔소의 출현’이라는 사건이 어떻게 무화되는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아가 이 버전은 한 명의 전문 논리학자가 아닌, 평범하고 순종적인 직원에서부터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광기 어린 학자로 경계 없이 변모하는 수많은 군중들을 보여줌으로써 보다 철저하고 진실하게 이 사회의 모순적 얼굴을 폭로해주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을 다루는 중에, 거의 <코뿔소>라는 공연 전체를 꿰뚫을 만한 아주 큰 대립이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한국 배우들은 현재 자신이 발화하는 대사가 논리학자의 것이냐 직원의 것이냐를 끝없이 되물었고, 프랑스 연출가는 언제나 동시에 논리학자이기도 하고 직원이기도 한 우리 내면의 참모습에 대해 끝없이 역설했다. 그들의 대화는 그렇게 평행선을 그렸다.

사실상 프랑스의 관객들은 한국 관객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논리적인 모순들을 심각하게가 아니라 매우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데카르트식 이성에 이미 너무나 익숙한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주 살짝씩만 어긋나는 논리적 유희에도 큰 웃음으로 반응하곤 했다. 그들에게 있어 논리학자 장면은 ‘논리의 비논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었으며, 논리와 비논리를 왕래하는 우리 내면의 모순은 사실상 모순이라기보다 진실 그 자체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유희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관객 뿐 아니라 배우들 역시 프랑스식 사고에 따르면 그런 능청스러움을 내보임이 마땅했고, 알랭 티마르는 아마 한국의 배우들에게도 그와 유사한 면모를 기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물론 한국의 경우는 크게 달랐다. 관객들의 심각함은 차치하고라도, 배우들부터가 심리학적인 인물 분석이나 상황에 맞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연기 등에 뿌리를 두고 있던 터에, 모호한 것을 모호한 채로 내버려두고 그 위에서 유연하게 놀 줄 아는 뻔뻔스러움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한국 배우들도 사람 안에 여러 모순된 모습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특정 순간의 특정 대사가 정확히 어떤 태도와 입장에서 비롯된 것인지가, 말을 내뱉은 그 순간의 진실한 연기를 위해 반드시 분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두 나라의 연극 문화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이해되는 상이한 방식으로부터 비롯된 문제이다. 그 토대는 너무도 달랐고, 해소되지 않는 질문과 답변이 소모적으로 오가는 동안 배우들과 연출 모두 곤란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서로가 소통을 포기하는 순간마저 발생했다. 심지어 어느 날 연출가는 논리학자냐 직원이냐 하는 질문을 제발 더 이상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이상 표면적으로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에 직면한 채, 이제는 선회하여 자기들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리게 되었다. 각자가 각각의 상황과 대사에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구체적인 장면 설명을 상상하기 시작했고, 연출가를 대신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과도한 조언을 일삼게 되었으며,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 지속되었고, 그래서 종종 <코뿔소>는 ‘사공이 너무 많은 배’가 되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재정 문제와 경험 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처음부터 드라마투르그나 작가를 따로 두고 의견을 조율하게 해서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논쟁을 끊어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신중하게 서로 간의 차이들을 납득한 뒤에 최선을 모색해가도록 했다면 훨씬 더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기에 서울에서의 연습 기간은 그처럼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후 그 상태로 아비뇽에 무작정 도착했을 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축제가 시작되고도 얼마 동안 <코뿔소>는 날마다 모험이고, 시행착오였다.

그러나 아비뇽 현지 공연은 정작 프랑스 관객들에게 너무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이오네스코의 원작에 무척 익숙했기에 텍스트의 구조가 변경된 것 등에 쉽사리 흥미를 느꼈고, 추상적이고 미니멀하며 세련된 무대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코뿔소를 실제적인 방식으로 등장시키지 않고 객석의 관객들로 대체했다는 점, 거울 속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외적인 것이 아닌 내면의 코뿔소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 점 등에 그들은 흡족해 했다. 이에 더해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연주되었던 한국식 퍼커션은 그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들이 찬사를 보냈던 대상은 대개의 경우 알랭 티마르의 해석이나 연출 방식에만, 심한 경우 이오네스코 원작의 탁월함에만 국한되곤 했다. 말하자면 한불공동제작 작품으로서의 <코뿔소>나 한국의 배우들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몇몇 언론이나 관객들은 ‘마치 무용을 보듯 몸의 앙상블을 느끼게 하는 연기’나 ‘표현에서 느껴지는 에너지’ 그리고 ‘연주자와의 조화’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으며, 직원들의 몸에 베인 ‘한국 특유의 공손함’을 눈여겨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랑스 관객들에게 ‘연기’는 ‘자막의 내용’으로 쉽사리 대체되는 경향이 보였다.

그런데 아비뇽의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게 인지되지 않았던 연기의 부분은 곧이어 있을 한국 공연에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었다. 국제 공동 작업, 특히 외국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작품에 대한 한국 연극계의 반응은 관대함이기보다는 여느 때보다 극심한 깐깐함일 것이었고, <코뿔소> 팀은 모두 그 심각성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예술가들의 이런 태도가 공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에게 공동 작업이란 것은 허울뿐이고, 실상은 외국의 관객보다 자국의 관객들을 훨씬 더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다소간 편중된 작업이 돼버리기가 쉬운 까닭이다. 물론 의식적으로 그들이 자국에서만 좋은 반응을 얻으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알랭 티마르는 프랑스 공연을 위해서 특별히 완벽에 가까운 자막을 매우 까다롭게 요구했던 것이 사실이며, 한국 배우들은 아비뇽에서와 달리 서울에서 특별히 더 자신들의 연기에 대해 엄밀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무턱대로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타국의 관객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태도가 세계화 시대의 공동 작업에서 기본적인 윤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문득 갖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서울의 관객들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2010년 9월 필자는 드라마투르그로서 한 발 늦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도움을 주신 김동현 연출가와 김덕수 작가와 함께, 드라마투르기 팀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텍스트의 대사를 다시 만지는 일이었다. 기존의 공연 텍스트는 오래된 두 번역본을 참고로 만든 것이라 표현상의 어색함도 있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연출가의 요구에 의해 배우들이 현대 한국 직장인들의 말투로 자연스럽게 바꾼 대사들이 가끔은 너무 가볍게 느껴져 코뿔소의 출현에 대해 반응하는 개개인의 삶의 깊이가 다소간 깎여나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후 새롭게 만들어진 대본으로 한두 번 배우들과 리딩을 했고, 연출가가 한국에 왔던 첫 날에는 리딩을 하는 사이사이에 바뀐 대사들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수정된 것은 대부분 작은 뉘앙스인 경우가 많아 통역하기가 심히 어려웠으나, 알랭 티마르는 바로 그 뉘앙스의 차이를 진심으로 알고 싶어 했다. 그는 만일 다시 한 번 서울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긴다면 프랑스어와 한국어 대사를 하나하나 대조해가며 전 작품을 다시 번역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미세한 차이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또 마음껏 다루고 싶어 했던 연출의 바람이 처음부터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배우들과 연출가는 그간 겪었던 모든 시행착오에 대한 서운함을 접고, 삐걱대면서도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의 즐거움을 조금씩 발견해나가며 힘을 내서 다시 연습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울 공연은 아비뇽 공연보다 한결 나은 상태로 무대에 올려졌다. 문제의 논리학자 장면에서도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고, 배우들의 앙상블은 눈에 띄게 매끄러워졌으며, 작품의 구조도 보다 분명해졌고, 전반적인 이야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이제는 배우들의 자발적인 목소리가 부정적인 불협화음보다는 매우 긍정적인 보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아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연기는 이제 비로소 음악과 호흡을 자유자재로 주고받는 여유를 보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의 <코뿔소>는 아비뇽에서만큼의 성과와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그럼에도 작품의 예술적인 완성도가 부족했던 탓이 가장 컸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적인 차이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요컨대 한국의 관객들은 외국에서 공연하고 온 작품에 대해 약간은 삐딱했거나 아니면 부조리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심각했고, 그랬기에 느슨하게 그 모든 유희를 즐기려 했던 프랑스 관객보다는 공연을 지루하거나 불만족스럽게 느낄 여지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살짝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프랑스의 관객에게도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배우들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는, 파시즘을 겨냥한 코뿔소 집단을 연기하면서 혹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느냐는, 다시 말해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미장센 너머에서 실제적인 북한 문제를 한국인으로서 더 다루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물론 사회적인 문제를 완전히 간과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국제 공동 제작에 있어 어쨌든 관건이 되는 것이 ‘예술’이라고 할 때, 각 나라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실제 사실들을 그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마땅히 다뤄야 할 것을 어째서 무시하느냐는 식의 당위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또한 상당히 편협한 태도일 수 있다. 사실상 많은 현대 한국인들은 이오네스코가 파시스트들을 봤던 것과 같은 시선으로 북한을 보지 않는다. 끝나지 않은 전쟁인 탓에 그것은 여전한 공포이고 상처이고 폭력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암묵적 묵인을 바탕으로 별 탈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한국의 코뿔소는 북한’이라는 식의 피상적인 논리, 그 자체가 어쩌면 또 하나의 ‘코뿔소’일 수도 있다. 연출가가 추상적인 미장센이나 내면적인 코뿔소를 택했던 것은 북한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한국의 이와 같은 미묘한 실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점은 오히려 높이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나 사회를 다루는 연극이 기존의 편견을 확증하거나 충족시켰을 때에만 만족스런 평가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또한 너무나도 ‘코뿔소’적이지 않겠는가.

어쨌든 이토록 수많은 ‘코뿔소’들을 맞닥뜨려온 <코뿔소>는 2011년 아비뇽 축제에서 다시 재공연을 도모하게 된다. 사실상 2010년 프랑스에서의 성공 직후부터 재공연에 대한 논의는 계속 이어져왔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어김없이 재정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또 여러 차례 제동이 걸리게 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11년에는 SPAF가 한팩(HanPac)의 하부기관으로 통합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첫째, 국가보조금에 의존하던 상당 부분의 지원금을 SPAF는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고, 둘째, 한팩으로서는 서울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 작업을 무리해서 다시 추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를 큰 과업으로 이끌어 왔고 한 해가 지난 뒤에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SPAF와 이에 무관했던 한팩은 입장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SPAF 측이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던 동안, 이번에도 중간에서 피해를 본 것은 예술가들이었다. 한여름 두 달 정도의 스케줄을 미리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배우들에게 충분히 일찍부터 알리지 못했던 점, 통역과 드라마투르기, 투어매니저 등의 작업을 재정상의 이유로 다시 한 사람에게 몰아주게 된 점 등은 예술가의 작품 제작 환경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기본적인 배려가 결여됨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 참여했던 팀이 다시 모두 함께 <코뿔소>를 공연하게 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모든 문제들을 이미 겪었고 앞으로 닥쳐올 문제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채로, 그럼에도 다 함께 또 한 번의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1년이라는 시간이 갖는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그 어떤 특별한 변화가 없이도 모두들 한층 성장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배우들의 참여는 이제 매우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작업에 빛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서울에서 만난 연출가와 배우들은 능동적으로 함께 장면들의 순서를 바꾸고 새로운 안무를 짜는 등 과감한 변화를 감행했다. 자연히 아비뇽에서의 공연도 지난해보다 훨씬 탄탄해졌고, 날마다 발전하려는 배우들의 의지가 끝까지 지속되었다. 이는 1년 전과 현저히 달라진 아비뇽에서의 생활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이었다. 이제 아비뇽은 모두에게 새로운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배우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도시 곳곳을 탐색할 필요 없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언제 어디를 가면 좋은지를 다 알고 있는 채로 매우 여유롭고 유연하게 그것들을 찾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작품에 대해서도, 이제 모두들 어느 장면 어느 대사 어느 몸짓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감각이 새겨져 있는지를 익숙하게 알고 능숙하게 대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로 시간과 인내가 맺은 결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연출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낙오자 없이 끝까지 같이 왔기에 비로소 돌아보면서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다 함께 감격할 수 있는, 연극은 그들에게 여행이었다. 그리고 아직 그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실제로 2012년 10~11월에 거쳐 프랑스 몇몇 도시들의 대여섯 개 극장을 도는 투어가 이미 확정 및 진행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이전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들을 바탕으로 보다 철저한 지원과 대응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듯 공동 작업 과정의 수많은 어려움은 그에 상응하는 성과와 결실로 나타났으며, 뒤이어 오는 자들이 시행착오를 조금 덜 겪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값진 흔적들도 남기게 되었다. 코뿔소가 되거나 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은 많은 연극인들에게 소중하게 넘겨졌다.

사실상 <코뿔소>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그들의 삶에 코뿔소가 나타나고, 이후 누군가는 어떤 이유 때문에, 또 누군가는 다른 이유 때문에 하나 둘씩 코뿔소로 변해가는 것. 그 중에서 베랑제는 영웅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최후의 인간으로 남는 것. 그 아름다운 연극은 지난 2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그렇게 공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배우들은 날마다, 코뿔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맨 처음 순간부터 코뿔소로 모두가 변해 버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를 무대 위에서 처음처럼 새롭게 살아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필자에게는 가장 커다란 감동으로 남았다. 날마다 다시 시작되었다가 끝나버리는 그 <코뿔소> 이야기 속에는 각 인물들의 지나온 삶과 소멸이 숨겨져 있을 뿐 아니라, 이 지난한 작업의 모든 순간들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알랭 티마르는 배우들에게, 그리고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계속 전하고자 했다. 코뿔소는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며, 그러므로 각자의 코뿔소는 모두 다르고, 그것은 악하기도 한 동시에 선하기도 하다는 것을. 또는 어쩌면 악함과 선함의 기준조차도 모호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코뿔소> 프로젝트 전체에 대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좋고 나쁨이 뒤섞인 그 모든 순간들을 지나, 무대 가득한 거울에 비친 우리는 마침내, 코뿔소이기도 하고, 코뿔소가 아니기도 하다.

연극포럼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