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d’Avignon 2010
아비뇽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교황청이 갖는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그 곳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장소이자, 여타의 의미들을 뛰어넘어 다만 그 육중함으로 현존하는 신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그 곳에는 그 해의 축제를 대표할만한 주요 작품들이 올라간다. 새소리마저 잦아드는 늦은 밤, 수많은 인파가 아비뇽의 좁다란 골목들을 헤치고 나와 주인 없는 교황청 안뜰을 가득 메우고 그 거대한 벽과 무대를 마주하고 앉는다. 그 공기와 빛깔만으로도 우리를 압도하는 저 공간에 대해서 공연들은 언제나 처음부터 커다란 빚을 지고 있다.
2010년 축제의 서막을 알린 개막작 《Papperlapapp》는 평소 장소 특정적인 작업을 즐겨하는 연출가인 Christoph Marthaler가 바로 그 교황청에 바치는 헌사였다. 그러나 ‘blablabla’를 뜻하는 그 제목에 걸맞게 작품은 온통 의미를 알 수 없는 냉소들로 가득할 뿐이다. 무대는 고해실과 교회 의자들, 세탁기, 냉장고, 지하 무덤의 돌침대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거기서 어떤 눈먼 이는 세탁기에 얼굴을 넣었다가 눈을 뜨게 되고, 사람들은 교회 성가를 휘파람으로 불다가 서로 정신없이 입을 맞추며, 교황의 옷을 입고 돌침대에 한참을 누워있다가는 이내 그 옷들을 벗어 세탁기에 넣기도 한다. 교황청 오른편의 가장 크고 아름다운 창 안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아래의 배우들이 합창을 하는 몇몇 장면들은 실로 아름다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보기에 그 연극은 전체적으로 그저 ‘blablabla’에 불과하였다. 많은 이들이 공연 도중 쿵쾅거리며 간이 객석을 빠져나갔고 배우들은 야유 섞인 짧은 박수만을 받았을 뿐이었다. Marthaler는 이번 축제의 두 협력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축제를 총괄하는 제목으로 ‘뒤섞기(mélanges)’라는 단어를 내세운 장본인이다. 해마다 축제를 찾았던 연극 애호가들은 소리 높여 올해의 그 뒤섞기를 비난했다. 그와 같은 제목 하에서라면 무엇이든 보여줘도 좋다는 말이 아닌가 하는 냉소적인 응대였다. 그들은 오늘날 유행하는 포스트드라마적인 여러 시도들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뒤섞임 가운데에서 그래도 어떤 일말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내비친 것이었다.
그리고 축제의 후반부에서 Marthaler는 《Schutz vor der Zukunft(미래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라는 또 하나의 공연을 올렸다. 이번에는 아비뇽 성벽을 빠져나와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외곽의 어느 학교에서였다. 공연과 전시, 산책으로 이루어진 4시간여의 작품은 비엔나의 어느 병원에 대한 것이었다. 그 병원은 1940년대 초반 정신적으로 질병을 앓고 있거나 문제아로 판명된 수많은 아이들에 대한 실험과 몰살이 자행됐던 곳이다. 우스꽝스런 연주들, 병원 창립 기념 연설, 아이를 돌려받고 싶은 엄마의 편지(연설자는 이것을 매우 무심하게 읽었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기록, 복도 귀퉁이 작은 스피커에 바짝 귀를 대고 듣는 아이들의 음성, 처치되어야 할 인류의 목록(우리가 포함된), 모두 함께 멈춰 서서 부르던 레퀴엠과 자장가 등을 통하여 Marthaler는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아픔들을 제시했고, 다음날 신문은 이렇게 기록했다. “어젯밤, 그는 그 어떤 야유도, 관객들의 공공연한 퇴장도 알지 못했다. 다만 거대한 갈채를 받았을 뿐.” 그 기사의 제목은 바로 “Marthaler의 복수”였다. 그리고 그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늦은 밤, 나는 문득 저 문제의 개막작을, 그리고 그 ‘뒤섞기’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축제의 주제는 ‘뒤섞기’이고, 두 명의 협력예술가는 음악가 출신 연출가 Christoph Marthaler와 극작가인 Olivier Cadiot였다. 그들의 대화를 엮은 조그마한 책자가 도시 곳곳에서 제공되었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대체 무엇과 무엇의 뒤섞기를 뜻하는 것인지가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의 출신이나 작품 성향으로 미루어보아 거칠게는 ‘음악(혹은 말이 아닌 여타의 방식들)’과 ‘말(부디 이것을 단순한 드라마 텍스트의 대사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사이의 뒤섞기의 경우를 먼저 고려해볼 수 있겠다. 사실상 이는 축제에 올려진 in 공연들 대부분의 특색이었는데,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거나 혹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이질적인 순간들이 모든 공연들 속에 (물론 각기 다른 비율로) 혼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My Secret Garden》이라는 공연의 처음 40분가량은 한 배우의 쉴 틈 없는 독백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두 명의 배우가 더 늘어나면서 말의 내용은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장황히 확대된다. 이때까지 무대는 그 뒤편에 철로 된 서류함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는 단순한 구조일 뿐이었다. 헌데 돌연 모든 말들을 멈추고, 배우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상자들을 끌어내려서 그 안의 것들을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들은 긴 침묵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바베큐를 굽고 와인을 마시고 영사막을 설치해 영화를 본다. 그들의 비밀의 정원이 그렇게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쏟아지던 모든 말들은 문득 하나의 아련한 이미지가 되었다. 끝으로 그 정원에서 은밀하게 내뱉어진 대사. “지금껏 내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
한편 오래된 성당의 안마당에서 5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던 《La Casa de la Fuerza(힘의 집)》라는 공연의 첫 3시간가량은 결코 가볍지 않은 노래와 몸짓, 외침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시대를 초월한 옷차림의 세 여인이 열 개가 넘는 커다란 소파들을 무대 위로 운반해 가슴을 드러내고 누웠다가 그것들을 기어이 모두 다시 들어내기도 하고, 흙자루들을 끌어와 바닥에 붓고 그 위에서 처연한 몸짓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관객들은 같은 시간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오롯이 겪어야만 했으며, 극한까지 우리를 이끌어가는 그들의 처절함에 지쳐갔지만, 또한 그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그들의 슬픔을 긴 시간 한 몸처럼 통과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후 30분의 휴식이 끝나고, 갑자기 세 사람의 어린 여성들이 무대 위에 오른다. 이들은 멕시코의 한 국경도시에서 있었던 여성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실제 증인들이다. 헌데 앞선 세 여인들의 신음에 비해 너무나 분명하고 또렷한 그들의 진술들(말들)은 그들이 겪은 아픔의 크기를 도리어 반감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세 여인이 그들을 위로하러 다시 무대에 나타나자 상황은 반전된다. 개인적인 사랑의 상처를 입은 자들이 사회적 폭력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지만 무대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채 그들이 서로에게 티라미스를 먹여주는 장면에 이르자, 위의 질문은 더할 수 없는 긍정의 답변 속에 사그라진다. (티라미스라는 용어의 뜻은 “나를 일으켜줘”라는 것인데, 극의 도입부에서 한 여인이 이를 자신의 애인에게 알렸다가 무시당한 일화를 전했던 바 있다.) 상처와 상처가 뒤섞이고, 상처를 증언하는 서로 다른 방식들이 뒤섞이며, 서로를 향한 뼈아픈 위로가 뒤섞이는 순간. 그리고 그 뒤섞임은 지극히, 고요하였다.
Marthaler와 Cadiot의 대화록에서 찾을 수 있는 ‘뒤섞기’의 의미에 대한 유일한 단초는 이와 유사한 측면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연극이 어떤 의미에서 굉장한 ‘축소(réduction)’임에 동의한다. Cadiot가 보기에 그것은 마치 Marthaler의 한 작품에서 “고속도로변의 모델 하우스와 베르디의 성가를 부르는 한 수도자”가 한 순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뒤섞기가 한 눈에는 매우 엉뚱하고 무의미할뿐더러 난삽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들은 재료들을 졸이고 졸여 만들어낸 소스처럼 진하고 농축된 맛을 낸다(réduction이라는 말은 ‘졸이기’라는 또 다른 뜻을 갖는다). 의미와 무의미, 언어와 비언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뒤섞기’라는 이 축제의 주제는 그런즉 초청받은 모든 공연들에게 있어 결코 쉽지 않은 테마였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말이 아닌 것들을 통해서 말하기’이자 ‘말하기를 통해 말 너머의 것을 제시하기’였으며, 그럼에도 어느 한 지점에서 무너져버리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크나큰 관건인 일이기 때문이다. 아비뇽의 공연들이 때로는 대수롭지 않았을지언정 그럼에도 내게 일정한 경탄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뒤섞음의 잡다함과 조악함을 넘어 그 속에서 유지되고 있던 저 팽팽하고 섬세한 균형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토록 잘 ‘졸여진’ 공연은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 일말의 의미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Marthaler의 두 번째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그 힘을 느꼈던 것이다.
나아가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공연들이 품고 있던 그 의미나 전언들은 전 축제를 관통하여 어떤 유사한 심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이 기획의 의도인지 혹은 그들의 의도적인 매만짐 없이도 도처에서 드러나버린 이 시대의 진실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진실들에 대한 은유였다: 사랑받지 못함과 사랑할 수 없음, 떳떳하지 못한 비난과 자조, 거짓, 불구, 자전적이거나 사회적인 아픔, 혹은 추억, 과거와 현재의 덧없음과 존귀함, 그리고 사라져버린 것들, 잊혀진 것들… François Orsoni가 연출한 브레히트의 《Baal》은 쓸쓸하고 아름다우며 처절하리만치 무능한 청춘을, Alain Platel의 신작 《Gardenia》는 인생의 끝에 선 꽃잎 같은 노인들을 각각 무대 위에 올려 거칠고도 내밀하게 매만졌고, Massimo Furlan의 《1973》은 그 시절 모든 국민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던 어느 국가 대항 노래 경연 대회를 우스꽝스럽게 재연하는 가운데 우상, 인디언들의 제의 의식, 영혼, 잊혀짐 등에 대한 심오한 논의를 곁들였으며, Boris Charmatz의 《La Danseuse Malade(병든 무용수)》는 거세게 트럭을 몰며 쉴 틈 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깡마른 여자 무용수와 부토의 정신을 결합시켰다. 또 le GdRA의 《Singularités ordinaires(일상적인 특이성들)》은 결국 언제나 우리들 중 한 사람인 (그리고 아름다운!) 누군가의 실제 이야기 및 그를 지켜보는 시선, 서커스, 음악 등을 절묘하게 뒤섞음으로써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전언들은 무어라 이름붙일 수 없는 하나의 기운이 되어, 아비뇽의 여름을 휘저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미스트랄처럼.
미스트랄은 그 지역 특유의 바람으로, 축제가 열리는 여름의 짧은 며칠 동안 해마다 아비뇽을 찾아오는 지독한 손님이다. 늦은 시각 교황청에서 올려지는 공연들과 특히 인연이 깊은 이 바람은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각별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번 축제 기간 동안 어느 학교에서는 이와 관련해 “바람의 역사”라는 제목의 비디오가 상영되기도 했다.)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남프랑스의 햇볕과 마치 폭풍 전야와도 같이 부는 한여름의 미스트랄은 참으로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그야말로 절묘한 ‘뒤섞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황홀한 뒤섞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좁고 긴 골목 사이사이를 휘청거리지 않고 제법 잘 걸어 다녔다. 우리를 붙들어주던 저 공연들은 때로는 이 글에서 잘 포장된 바와 달리 매우 볼품없기도 했고, 때로는 미처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폐막작인 《La Tragédie du Roi Richard Ⅱ(리처드 2세의 비극)》에서 리처드 왕은 “아무것도 아니기의 달콤함(douceur de n’être rien)”에 대해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 밤 교황청 안마당에는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쳤고, 배우들의 의상은 하늘 높이 춤을 추며 날아올랐다. 우리 모두가 빚을 지고 있는 그 황홀한 풍경들. 그래 설령 아무것도 아닌 뒤섞임들일 뿐이었을지라도, 누가 이 여름의 아비뇽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연극평론 2010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