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석 ‘우연의 정원’ 영상을 위한 나레이션 (2019년 12월)

생이 고단할 때면 만났던 식물들과 만나게 될 식물들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집이 될 수는 없어도 몇 잎의 푸름들에게 집을 내어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무성해진 잎들로 세계가 잠식당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기에는 언제나 세계가 너무 크고 허망하였다.
그러나 종국에는 식물만이 남을 것이다.
모든 기타는 일찍이 나무였었고, 노래는 나무를 울려 진동을 타고 허공 중에 잠시 머문다.
식물들은 노래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버드나무가 있던 집에서는 무료한 무력감을 안고 이따금 소리 내어 물었다 버드나무야 나 노래할까.
그러면 버드나무는 다정히 침묵했다.
두고 온 버드나무가 있어 이곳에서 만나는 모든 버드나무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일에는 푸른 역사가 있고 모든 푸름은 이내 저문다.
거기서 다시 푸름이 난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식물만이 남을 것이다.
오직 그들이 스스로 만든 우연 속에서.
잠시 손길을 얹었을 뿐인 사람들을 그리워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