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스스로 길을 찾기에는 무력했으므로, 어딘가 아직도 내게 열리는 문이 있다면 그저 따라가리라는 마음으로, 먼 곳의 해안을 걷다가 문득 기별을 받았다. 그 후로도 몇 개의 수업이 추가되어, 귀국하자마자 생애 가장 열심인 봄을 보냈다. 만나게 된 얼굴들을 사랑하고 말 것을, 만나기 전부터 다 알고 있었다. 기말시험을 보던 날, 신중하게 숙인 고개와 똑똑 책상을 두드리던 펜 소리들, 누군가와는 그것이 영영 마지막일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지나간다는 것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나날, 처음 맡게 된 강의가 깜냥보다 너무 많아 한없이 걱정하던 내게, 강의 주제들을 물어보곤 아 그것 참 아름답구나 했던 파트리시아의 한 마디 때문에, 나는 아름다운 것을 전할 수 있었음을, 생을 움직이는 건 오직 누군가의, 한때의 환함이라는 것도, 모든 처음은 슬프다는 것도, 그래서 찬란하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