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 동안 매일 밤, 이 연극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매일 밤, 먼 도로에서 전복된 자동차의 흩어진 부품 사이, 영영 모를 타인의 아픔 어두운 구석에 앉아,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알고 살 수 있겠냐는 말 앞에 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랬어야 했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허공 중에 외치는 그 회한들의 순전함 속에 무너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매일 밤, 다시 연극이 시작될 때, 이제 곧 죽게 될 사람의 아직 살아있는 얼굴, 이제 곧 죽게 될 사람과 아직 함께 살아있어 인사를, 다정을, 상처를 주고받는 얼굴들을 매일 밤, 다시 볼 텐데.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모든 말이 서로에게 아픔이 되는 것을, 그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킨다 해도 달라질 수 없었을 것을, 그는 죽게 될 것을, 그들은 남게 될 것을, 하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죄송해지는 것을 바라볼 텐데.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연거푸 말하는 얼굴들 앞에 죄송해서, 너무 죄송해서 아득해질 텐데.
본디 극장은 유령이 귀환하는 공간. 말해지지 못한 이야기가 돌아오는 곳. 돌아와서도 침묵하고, 침묵 속에서도 우리가 듣는. 공연의 마지막 날, 앞 못 보는 분들이 객석 맨 앞 줄에 앉아 수신기를 꽂고 무대 해설을 듣고 계셨다. 듣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자막과 수어 통역도 동시에 진행됐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나는 이따금 이 연극을, 저 유령을, 보지 못하는 감각, 듣지 못하는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이 무대를, 저 외침을, 듣기만 하는 감각과 보기만 하는 감각을 감히 상상했다. 균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부품들, 처음부터 폐허였던 도로, 격자형 바닥 위를 가르는 조명, 희미한 푸른 빛, 파도 소리, 서로를 응시하지 않는 눈빛, 허공 중에 띄워보내는 목소리, 한참 후에 도래하는 대답, 표정 없는 침묵의 얼굴, 공허하고도 간절한 마디마디의 억양을, 누군가는 듣지 못할 것을 생각했다. 저 배우가 똑같이 무대 위에 존재하여도, 조금 전까지 살아있다가 지금은 유령이 된 것을 누군가는 보지 못할 것을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불경하게도 더 깊은 것들이 보이고 들렸다.
유령이 되어 돌아온 자의 얼굴에, 조금 전 보다 더 잦은 웃음이 미세하게 번진다.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떠났기 때문. 괜찮아졌기 때문. 그들은 괜찮아졌는데, 살아있는 자들은 자꾸만 그들을 무대로 소환하고 마는 일. 어떻게 했어야 했나, 정말로 죽었는가, 왜 죽었는가, 누가 죽였는가, 무엇을 견뎌야 하나, 어디까지 가야 하나, 어디까지 갔다가 돌아와야 하나, 불가능한 해답을 셈하며 죽은 사람 탓을 하고 마는 일. 그러나 모든 것은 그때의 최선이었던 것을, 아니 최선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을, 우리는 언제까지고 누구에게고 미안한 채로 살아갈 것을, 그게 살아있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총격이 있었던 그 다음날 사람들은 무섭다고 했다. 그러자 누군가 ‘나는 무서워한다’ 라는 말이 ‘나는 (아직) 살아있다’ 와 등치를 이룸을 지적했다. 우리가 이토록 슬픈 것은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생의 무게를 책하게 했다.
이제는 무섭지 않은, 괜찮아진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극장으로 귀환한다. 나는 욕심을 부려 그 소매 끝을 붙들고 더 오래 같이 있기를 빈다. 7번국도를 굽이굽이 달리자고 말한다. 창문을 내리고, 파도가,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