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린 아주 짧은 꿈.
오래 잊고 있던 한 장소가 생경한 얼굴로 꿈에 나왔다.
여전한 잠결에 깨어 그곳이 어디였나 더듬어보니, 큰아버지댁 안방에 달린 화장실이었다.
식구가 많은 큰집의 바깥쪽 화장실은 늘 어딘지 정신없이 물이 찰박거리는 느낌이라,
나는 매번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가 깨끗하고 비데도 달린 좋은 변기를 쓰고 좋은 비누에 손을 씻고 나왔었다. 친가 쪽 아버지 형제의 열세 명 아이 중에서 가장 예쁨 받는 막내였던 내가 남몰래 혼자 찾아 누리는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그 화장실이었구나, 아득히 알아보며
계속해서 눈을 감고 나는 생각했다.
작년, 내가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동안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후에 큰어머니는 큰언니 집으로 아예 이사를 나오셨던가.
그 방 화장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나.
존재의 소멸은 그 존재가 머물렀던 집의 소멸과 연결된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채 실감나지 않던 큰아버지의 죽음이 그 화장실의 꿈결 같은 사그라짐으로
바야흐로 아득해졌다.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은 어디에 있을까.
내 안에, 눈 감으면 만져질 듯 선연한 장면들로 여전히 다 남아 있다고 말해도 좋을까.
언젠가 내가 사라지면, 그래도 그 집들이 남을까.
나와 함께 사라질까.
그래서 때로는 부단히, 남기는 행위가 필요할까.
내게 문을 열어주는 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이 그 집의 무늬인지, 그 집보다 먼저 있었던 다른 모든 집들의 자취인지,
하여 집의 역사인지, 혹은 집에 거해온 존재의 역사인지, 어쩌면 이 모든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떤 날에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충분히 눈에 담고 충분히 걸어다녔더니
불현듯 언젠가 오고 말 이별이 덜 서글퍼졌던 것처럼,
충분히 사랑하였기에 덜 아득한,
뒷모습을 남기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
충분히, 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말이겠지만.
2016년 12월
사라진 프로젝트를 준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