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창경궁이 내려다보이는 호텔방에 있습니다. 깊은 밤 궁은 짐승처럼 캄캄해요. 날이 밝아오면 내일은 대온실에 가볼 예정입니다. 그곳을 거닐며 제가 무엇을 생각할지는 자명해요. 언제부터 이토록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던 그 날에 저는 창경궁에 있었어요. 그 해 가을, 힘겨웠던 한국행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반나절의 안식이었죠. 궁을 걷다보니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고, 그 날이 아니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한국행에 국한해서 말이에요. 우리의 전 생애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조금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그토록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았던 거예요.

오늘 서울에 와 선생님의 추모제 공연을 보았습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이라는 제목인데, 마음에 드실는지요. 저는 그 제목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행이다, 하시겠지요. 정원씨 마음에 들었으면 다행이에요. 듣지 못한 말들을 멋대로 연상할 때 외람되게도 선명히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원씨 우리 꼭 봐요. 마지막으로 손을 맞잡던 날 그 약속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창경궁에서 제가 전화를 드렸을 때도, 도저히 시간을 뺄 수 없어 미안해하시며 선생님은 당부하셨지요. 정원씨, 우리 꼭 봐요. 그때 제가 솔직하게, 이번 한국행에서는 더 가능한 때가 없을 것 같아요,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으면 우리는 그 날 기어이, 어떻게든 만나고 말았을까요. 그랬다면 물어보셨겠지요. 어떻게 지내는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그즈음은 어떤 주제에 마음이 기우는지, 어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어떤 추함을 불편해하는지, 이제는 누군가를 사랑도 하고 연애도 하는지, 그래서 더 깊고 쓸쓸해졌는지. 이제 와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때 저는 생의 바닥에 닿아 있었고,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늘 다정하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궁금해하신 저의 생각들, 저의 생각들은 온통 퇴색해 있었어요. 모든 것이 부질없었고, 흥미로운 주제가 오직 도망 뿐이던 가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그 날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창경궁 뜰 안 어느 돌틈을 밟고, 실은 조금 안도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듣고 싶어하실 만한 이야기를 제 안에서 한 톨도 길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저는 잘못했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듣고 싶어하실 만한 이야기를 감히 속단했습니다. 저를 향한 경청의 깊이를 오해했습니다. 감히 외로운 척을 했습니다. 그것이 미안합니다.

추모제를 위해 배삼식 작가께서 쓰신 희곡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특별히 1장의 도토리 나무 이야기와 아주 큰 머리 이야기가 좋았어요. 또 3장에서 돌연한, 언제나 돌연하게만 발생하는 이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탁구공-도토리들이 무대 위로 쏟아져내리고 배우가 마이크를 멀리한 채 “연극은 끝났어어어” 곡을 하듯 외친 순간이 좋았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삶이 끝난 것을 비로소 체감했습니다. 그 연극이 정말로 끝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오늘 본 공연은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특별히 문장을 거의 들리지 않게 만든 2장의 연출이 그랬어요. 사실은 꽤 화가 날 정도였지요. 선생님 생각을 하며 어느 길목에선가 눈물이 차오르다가도, 다음 순간 무대의 안일함에 감정이 식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습니다. 궁금해하실 테니까요. 선생님은 당신이 올리신 한 공연이 많은 결함을 안고 있음을 알고 계셨던 그 언젠가에도,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 느끼는지, 저의 의견을 진정으로 청해 듣기 위해 극장 로비에서 가만히 저를 기다리신 분이 아니었습니까. 당신의 작업에 관해서든, 다른 연극에 관해서든, 다소 신랄하고 투박하게 늘어놓는 저의 비평을 언제나 무척 즐거워하셨지요. 우리는 두 개의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아름다움에 관해서만큼은 진실만을 이야기하던 많은 밤들을 보냈습니다. 그 커피점 중 한 곳에 가 오늘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어요. 글쎄 선생님의 추모제 공연을 보았는데 말이에요, 하고 시작하면 남은 생애 내내 이어질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이 가장 보고 싶어지게 했다는 측면에서 이 공연은 일종의 소임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얘기를 하면 우리는 웃겠지요.

사실 저는 공연을 보자마자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을 매우 싫어합니다. 발화의 형식 안에 한 번 가둬버리면, 그 밤 저를 사로잡은 감각의 아득함이 처연히도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되도록,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혼자서만 간직하고픈 생각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면 도리 없지요. 저는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었는데요. 언제까지나 그랬을 것인데요.

선생님만큼 저를 선하게 궁금해한 사람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침내 이 편지를 쓴다고 해서 제가 우리의 이별을 한 장 과거 속에 가둬버리는 것은 아님을 부디 알아주세요. 그러나 역시 조금, 쓰면서 조금 울었고 애석하게도 눈물에는 정화의 기능이 있지요. 선생님의 연극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내일은 창경궁에 갔다가 혜화로타리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떠나신 후로 처음 가보는 것입니다. 엘빈에서 차를 마시고 혜화로타리에서 택시를 태워 보내주신 그 언젠가, 빌려드리고 돌려받지 못한 시집이 있었던 것을, 선생님을 보낸 얼마 후 돌연히도 깨달았던 적이 있습니다. 마종기 시인의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였지요. 정원씨 고마워요, 제가 잘 읽고 꼭 돌려줄게요.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