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현숙에게 서프라이즈를 했다. 얼마 전 추운 밤 건물 앞에 서 호빵을 나눠먹으며 그날 한식당의 생일떡 서프라이즈에 울었다는 한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서프라이즈 싫어, 성실한 설명을 원해, 괜히도 당차게 말했던 그녀였었다. 언니 내가 여태 제대로 된 서프라이즈를 안 받아봐서 그랬나봐, 싱글벙글한 얼굴로 현숙은 내 머리카락을 들춰가며 그 안에 뭘 감춰왔나 구경하는 시늉을 했다. 사실 서프라이즈란 별 것 아니고 다만 나의 예고 없는 등장이 기쁨이 된 것으로, 셔터가 내려진 한식당 앞에서 노란 유리문을 기웃거리다 현숙, 하고 내가 속삭였고 나를 발견한 현숙이 언니 뭐야 언니 새야? 하고 웃으며 옆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몇 가지 선물을 쥐어주고 마주잡은 손만 휘휘 허공에 돌리다 두어 번 포옹 끝에 우리는 다시 길 위에서 헤어졌다. 하필 내리막길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란 말을 어기고 서너 번 돌아보다 총총 내려가는 내 걸음 걸음에 마음이 깎여나가는 듯했노라고, 몇 분도 안 돼 문자가 도착했다. 언니 나 너무 슬퍼 보고 싶어 돌아와라.

그때, 나는 미처 몰랐지만 그때 그쪽이 슬펐노라는 소식을 시차를 갖고 뒤늦게 듣는 일에 대해 이즈음 종종 생각한다. 나만의 문장과 침묵에 빠져 고개 돌려볼 겨를조차 없던 동안에, 사랑하는 이들은 나를 위해 말을 아꼈고 그리하여 내가 그들의 슬픔을 실시간으로 전해듣지 못한 일에 대해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런 마음이었다고 알게 될 때마다 한없이 미안하던 것. 이제 나는 부디 언제나 실시간으로 존재하며 그 존재의 – 서프라이즈든 아니든 – 효용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결국 한국에 돌아가 살기로 결정한다면 아마도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터. 그러나 이제는 여기에도 어느덧 두고 떠나기 가슴 아픈 얼굴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다. 현숙과 헤어져 전철을 타고 가다가 그러므로 이번 생은 망해버렸군, 중얼거렸다. 지구 곳곳에 사랑을 두게 되어 언제 어디서도 나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무언가를 영영 두려워하며 살게 된 것을, 생각할 때 하필 이어폰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때 말하지 못한 말들은
이제 다시 전할 수 없네
그때 잡았던 손끝도
더 이상 내 것 아니네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아득히 띄우고 살다
정말로 다른 세상이 있어
꼭 다시 만나게 되면
품었던 이야기야 다 버리고
그때 잘 가셨느냐고
그때 괜찮았냐고 물어보겠네

금방 올게 사실 벌써 돌아오고 싶다. 그 마음 알기에 기꺼이 기다립니다- 돌아오는 사람 기다리는 거 나쁘지 않지, 좋지. 두 달 간의 한국행을 앞둔 나와 프랑스에 남아 홀로 연말을 보낼 현숙은 그렇게 서로 문자를 맺었다. 돌아오는 사람 기다리는 거, 그 좋은 것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접기로 했다. 다만 짧은 이별만을 모른척 슬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