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재 ‘집전’ 에세이 (2017년 9월)

빈 집, 빈 집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두가 익숙한 것, 사랑하던 것,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아끼던 공기는
이토록 차갑고, 숨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을까.
그것이 사람, 사랑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온기는 한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또 절감하고 떠난다.
그래서 팔다리 잘라내는 일이 이토록 가벼웠을까.

긴 아픔을 담보로 얻은 십년짜리 체류증이었다. 그런데도 어느 날 문득 그녀는 홀연해졌다. 깊었던 사랑들이 저물어간 도시, 끝내 이방인으로 남은 그곳에서의 삶을 정리하며, 그녀는 한 겨울 빈 집의 문을 닫고 돌아나왔다. 파리는 빈 집이 되었노라고, 그리하여 집을 찾아 꼭 떠나야만 하는 사람처럼 내게 편지 한 장 남겨둔 채로.

Territoire. 두 개의 언어가 모두 낯설어진 지 오래인 나날, 우리의 대화 속에는 종종 번역되지 않는 단어들이 끼어들었다. 이 경우 나는 되려 생경한 직역을 선호하므로, 굳이 ‘영토’ 라고 그 말을 옮기며 그녀의 허무를 받아 쥐었다. 긴 세월 머물며 많은 이들과 섞여 벗하였으나, 마음이 삐걱일 때마다 다만 자신의 영토가 아니므로 삼켜야 하는 주장들이 많았노라고. 영토가 없으므로 뿌리도 없었던 그는 칠층 높이의 차가운 방, 가벼운 침대 위를 부유하는 몸일 뿐이었다고. 허공 중의 섬에 갇혀 고독했던 시절의 문을 닫으며 그녀가 말했다.

공항에서 그녀를 배웅하던 날 나는 커다란 어항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크고 무거운 유리 어항엔 점점이 세계 지도가 새겨져 있어, 거기 물을 담고 금붕어 몇 마리 넣은 뒤 멀리서 조명을 비추면 가없는 유영의 그림자가 빈 벽에 남겨지던, « 어디나 당신의 고향 » 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더랬다. 단 하나의 고향을 되찾기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 그녀는 역설적으로 내게 그 어항을 남겨두고 갔다.

아이스크림 하나 입에 물고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튈르리 공원 초입의 벤치에 앉아있다가, 석양을 등지고 강을 따라 걸으며 씨떼 섬의 끄트머리를 일별하는 일이 아름다운 것도 나는 그녀에게 배워 알았다. 그녀가 사랑했던 많은 풍경 속에서 홀로 남아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우리들의 집은 어디일까. 우리는 모두 어디로 흘러가나. 어쩌면 우리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지. 나는 아무데도 없는 존재. 내게는 그 쓸쓸함이 오랜 친구 같으나, 그녀에게는 커다란 아픔이었던 것을, 그리하여 « 전투적 프랑스 체류를 위한 무장하기 » 작업에서 오래 전 그녀가 붐가 스티브의 가면을 쓰고 물총을 들었던 것을 생각했다.

일찍이 둘이서 터키를 여행했을 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우리의 국적을 가늠하지 못했었다. 외국에 나와 오래 살다보면 얼굴이 변한다더라, 국적이 지워진 얼굴로 웃으며 우리는 서로의 깊은 방랑을 들여다보았다. 어디나 고향이되 어디에도 고향이 없는, 그 정처 없음이 그 자체로 우리의 뿌리가 되어 마음의 영토를 잠식했다. 허나 그녀는 황금빛 사원의 화려한 궁륭을 올려다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고국의 빛을 그리워하는 사람이었다. 저 강렬함이 저들의 빛이라면 우리의 빛은 창호지 문에 어리는 어스름이야, 뿌리가 아픈 나무처럼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이서재로 돌아갔다. 손수 벽을 바르고 바닥을 채우고 창에는 그립던 빛을 드리웠다. 기능성을 기준으로 구획되지 않는 방들. 하나로 뚫린 긴 공간 속에서 때로는 다과상을 차리고 때로는 먹을 갈고 아침 저녁으론 이부자리를 깔고 걷었다. 일종의 제의처럼 반복되는 매일의 습관들이 그녀의 몸을 집안 곳곳에 찬연히 깃들게 했다. 그렇게 두 발 딛은 몸의 존재로, 뿌리 내린 안온함으로 그녀는 그 집에 거주한다. 이는 단지 현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확장된 삶의 형태로 분사된다. 그리하여 집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행위 및 사건들이 집 자체와 하나가 된다. 음식을 담을 그릇을 만들고, 식사에 곁들일 술을 직접 빚는 일은 이서재의 일부를 이룬다. 피아노를 연주하면, 창에 달린 풍경이 다정히 화답하듯이.

멀리 있는 내게 그녀는 언젠가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 보여주었다. 저 까마득한 산들과 기암괴석과 안개와 구름에 둘러싸여서, 아무데도 없는 것이 아니라 짙은 농음처럼 선명히도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는 소식. 스스로 집이 되었다는 편지. 그것이 나를 낡은 한옥처럼 안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