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옹 구시가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생쥐스트 대성당에는 때마침 아베마리아가 울려 퍼졌다. 그 주일의 미사는 2차대전 승전기념일에 부쳐, 전쟁 중 사라져간 이들을 위한 추모를 겸하고 있었다. 주기도문을 왼 후 마지막 순서가 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하얀 티슈 한 장씩을 꺼내들었다. 성모상이 올려진 하얀 꽃더미를 관처럼 운구하며 느린 행렬이 통로를 가로질러 문을 향해 나아갔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끝없이 멜로디를 되돌려 사람들은 노래했고, 허공에는 티슈의 물결이 나부꼈다. 누군가는 하얀 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있었고, 누군가는 흔들던 티슈로 눈물을 훔쳤다. 꽃관이 가까이 가자 성당의 문이 열렸다. 오월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모든 아득한 장면 속에서 끊이지 않고 고요히 퍼지던 노래는 그 어느 천상의 멜로디인가 하였다.
일전에 파리를 찾았던 한받과 짧은 인터뷰를 나눈 끝에 나는 질문했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겠지만, 만일 정말로 완벽하게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 온다면 어떤 음악을 하실 것 같나요 ? 한받은 짧고 묵직하게 답했다. 아무래도, 천국의 음악을 하겠죠. 천상의 음악.
국민 사직. 국민 사직.
국가가 나를 해치기 전에 내가 먼저 사직.
리옹행에 앞선 파리 공연에서 한받은 세월호를 이야기했고, 이어 처연한 가사를 연호하며 신나게 춤추었다. 모두들 즐거웠다. 가장 슬픈 이야기를 가장 신나는 음악에 맞춰 부르며 춤추는 일에는 역시나 어떤 애상이 스며있었다. 내가 아는 한받은 그러나 국민 사직을 자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함께 고통받고, 함께 노래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국가를 그는 차마 버리지 못할 것이다. 하여 국가가 우리를 해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국민임을 사직하자 노래하면서, 한받은 역설적으로, 국민을 해치지 않는 국가를 이루어가기 위해 멈추지 않고 투쟁한다. 노트북 한 권과 찬연한 색의 옷가지 몇 벌 품에 안고, 거리로, 폐허로, 두물머리로 향한다. 그런 그가 부르는 노래이기에 저 가사는 여러 겹의 진정성을 품는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언젠가는 천상의 음악을 할지 모를 한 거리의 음악가는, 지금 우리와 함께, 진창 같은 세상에 남아 노래 부른다. 맥주를 마시며 봉제 인형을 하늘 위로 던지며 리옹의 관객들은 뜻모르는 노래들을 따라하고 춤추었다. 한받의 투쟁, 한받의 역사, 신나는 멜로디에 숨겨진 한받의 아픔, 한받의 탄식, 한받의 용기, 도저한 한받의 결단을, 차마 모르는 채로. 주어진 몇 개의 프랑스어 표현들을 다만 주워섬기며 aimez, aimez, ce soir (오늘밤 사랑하세요) 라든지 comme si comme ça (그저 그래요), on y va tous, ensemble (우리 모두 함께 갑시다) 를 외칠 뿐. 헌데 저 마지막 문장에는 사실 ‘그 곳으로 (y)’ 라는 표현이 숨겨져 있다. 우리 모두 그 곳으로 함께 갑시다. 그러나 어디로 ? 한받이 외치는 그 곳이 어디인지, 어쩌면 프랑스의 관객들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나, 그럼에도 그들은 알았을 것이다. 그 곳, 손 강이 론 강으로 투신하는 리옹 두물머리, 그 하늘을 분홍으로 물들이던 놀, 풍성한 오월의 구름 빛처럼, 세상의 모든 진실과 모순, 아픔과 기쁨이, 겹겹이 찬연하게 펼쳐질 그 곳.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랑의 나라.
그러므로 진창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함께,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나마 웃으며 춤추며 부르는 이 모든 노래들이 미처 천상의 노래가 아니라고, 그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