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밤의 테러 직후 프랑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고 주말 동안 극장과 미술관을 비롯한 모든 문화 기관이 문을 닫아걸었다. 집회는 금지되었으며, 공포의 기운이 모두의 일상 속에 침투했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정부의 권고를 어기고 리퍼블릭 광장에 운집한 프랑스인들은 삶의 기쁨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수호하겠노라 수천개의 초에 불을 밝혔다. 피가 뿌려졌던 거리에는 꽃들이 놓였다. 곧이어 인터넷 상에서 #Jesuisenterrasse 라는 해시태그가 새로운 슬로건으로 대두되었다. «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러, 우리는 까페 테라스에 앉는다. » 테러리스트들이 혐오하고 공격한 바가 다름 아닌 프랑스인들이 거리낌없이 누리는 저 자유였으리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실상 나는 오래도록 두려웠다. 맞서 지켜야 할 것이 한낱 내 개인의 자유와 기쁨이라면, 굳이 테라스로 나갈 용기를 아직까지는 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편지를 읽었다. 테라스에 나가는 일이 근본이 아님을 꼬집는 이 명쾌한 편지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보다 확고한 용기를 되찾아 주었다. 하여 편지의 발신인 사라의 승인과 지지 하에, 아래 글을 한글로 옮겨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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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리는 모르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나는 프랑스인이고, 아직 서른이 안 되었다. 파리는 나의 도시다.

나는 80개가 넘는 국적의 친구들이 있던 국제 학교를 다녔다. 여행도 꽤 많이 했고, 할 줄 아는 언어도 여럿이다. 나는 공화주의자인 동시에 다문화주의자다. 나는 « 여러 혈통을 지니고 » 있는데, 소위 말하는 마그렙 출신이다. (마그렙은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를 포함하는 북아프리카 지방을 일컫는다_역주) 무엇보다 나는 말과 이야기를 좇는 자다. 나는 세상의 작은 모퉁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며,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잠자고 있는 힘들에 목소리를 주고자 한다.

나는 언제나 테라스들을 사랑했다. 마지막으로 파리에 갔을 때는 10구, 11구, 18구의 까페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테라스에서, 나는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아도 되는 사치를 누린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저 도시의 중심에서 나 자신의 소식들에 귀 기울인다. 숱한 지나감의 한 가운데서, 바깥에도 안에도 속하지 않은 채, 나는 기다림을 음미한다. 거리에서도, 완전히 다른 어떤 곳에서도 아니지만, 나는 도시 전체와 만날 약속을 한 채 거기 앉아있다. 거기서 나는 테라스의 연대기 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했다. 그 책은 지금 몇몇 출판사의 원고 더미 어딘가에 깔려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거기 몇 페이지를 더하고자 한다.

오늘, 내가 가고 싶은 곳은 테라스가 아니다.

며칠 전부터 사람들은 이곳 젊음의 자유(liberté)와 혼성(mixité), 발랄(légèreté)이 공격당했으며 그러므로 저항하기 위해서 모두가 테라스로 나가 맥주잔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모르겠다. 만일 라데팡스에서의 테러가 예정대로 거행됐다면 그때도 사람들은 페이스북에다 « 정장을 입고 마천루 아래로 ! » 라며 커뮤니티를 조성했을까 ?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참여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경영자 및 임직원의 국민적 자긍심을 외치며 ?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공격당한 것은 이 나라가 자유와 관용의 큰 표본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들 정체성의 위기에 파인 상처를 덮고 안도하고자 함일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혼성과 자유와 축제를 누리는 나라나 도시는 그밖에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 베를린,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도쿄, 상하이, 이스탄불, 뉴욕의 까페 테라스에 가 보라 !

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읽는 가운데 내가 파악한 바로는 오히려, 프랑스가 과거 중동을 식민 통치한 열강 중 하나이기에, 몇몇 나라의 천연 자원에 사악한 손길을 뻗치며 그곳을 폭격했기에, 지형적으로 접근이 용이하기에, 말하자면 벨기에로부터 가깝고, 벨기에 및 프랑스인 지하디스트들이 프랑스어로 소통하기가 쉬웠던 탓에, 지하디스트를 모집하는 데 있어 프랑스가 비옥한 땅이었기에, 우리는 공격받았다.

그렇다. 현실은 우리의 환상보다 덜 섹시하다. 그러나 한번만 생각해보면 그 편이 다행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어떠한 바로 인해 공격받았다면 우리는 별다른 변화를 도모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행한 바로 인해 공격받은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행동들에 착수할 수 있다 :

-가령 우리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찾아내고자 연구할 수 있다. 더 이상 석유가 모든 지정학의 척도가 되지 않는다면 중동은 우리의 무차별적 관심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티벳이나 콩고 사람들의 삶이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 사람들의 삶과 동일한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질 것이다.

-폭탄을 투하하기로 (그들에 따르면 폭탄이란 것이 때로는 선한 역할을 하므로), 결국 성공한 ISIS에 불과할 나라들과 교역하기로 결정하는, 경영학도 출신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우리나라의 행동권을 위임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찾아나갈 수 있다.

-한편 이번 테러가 많은 젊은이들의 경찰 지원을 야기했다고 기사들은 쓰고 있다. 다행인 일이다. 그러나 교육자, 선생, 사회적 발언자가 되어 프랑스라는 비옥한 땅에 지하디스트의 씨앗이 심기기를 막고자 하는 지원자들은 어디 있는가 ? 만일 그 같은 일에 지원함이 경찰 지원과 동등하게 많아졌다면, 어째서 기자들은 표면적인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며, 만일 실제로 젊은이들이 교육자보다는 경찰이 되기를 지원하고자 돌아선 것이라면, 이 사태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지를 또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이다.

만일 이 영속적인 위협에 맞선 프랑스 젊은 세대의 유일한 답변이 테라스에 나가 마시는 것과 콘서트에 가는 것에 국한된다면, 우리가 과연 스스로 자칭하는 저 숭고한 자유의 상징에 걸맞을 수 있을지, 나로서는 의문이 든다. 현재 우리를 향하고 있는 전 세계의 주목에 응답하자면 우리는 보다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대에게 테라스로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 물론 테라스에 가야 한다. 빵집에, 도서관에, 영화관에 가야하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다만 살아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저항이다. 그러나 이 같은 « 전시 » 상황에서, 혹은 모든 상황 속에서, 예외적으로, 가능한 한 가장 효과적인 선택들을 해야할 것이다. 헌데 미디어의 가상 세계에서 나는 아직 « 서로 이야기합시다 ! » 또는 « 서로 도웁시다 ! » 류의 운동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일 때, 나는 우리들 저항의 상징이 테라스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이미지로 환원되는 것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나의 상징이- 내민 손과 열린 귀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너무 이른 것일지 모르나, 질문을 제기하는 데 있어 너무 이른 때는 없으리란 생각으로 나는 묻는다. 함께 있어야 한다는 오늘의 필요를 적극 활용하여, 미디어가 우리들의 젊음에 투영하는 이미지를 우리 스스로 재정립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저 혼성과 자유와 축제의 상징 속에서 도무지 내 얼굴을 식별해내지 못하겠다. 어쩌면 그대도 한편으론 그러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수천개의 얼굴이 있으니까. 매일의 일상에서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행동을 개시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모델을 찾고자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상징 따위를 만들어 배포할 시간이 없다. 반면 어떤 이들은 진실로 행동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직, 질문을 제기하지 않았으리라. 나는 마지막 두 경우의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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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혼성 (Ma mixité)

마그렙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말리인이든 중국인이든 쿠르드족이든, 무슬림이든 유대인이든 무신론자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우리는 모두 신자유주의와 과소비주의의 일개 유순한 군사들로 전락하는 한,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해진다. 우리는 수천 헥타르의 숲을 파괴하고 아마존의 생명을 앗아가는 누텔라를 계속 구매하며, 최신 아이폰을 구비하고, 그로써 구형 전화기의 고철덩어리를 저 쓰레기 산에 더하며, 방글라데시나 중국 어린이들이 염색한 값싼 옷을 선호하고, 동물 실험을 거친 화장품을 구매하는 데 연간 수백 유로를 소비하며, 남아있는 천연 자원을 파괴한다.

그러나 나의 진짜 혼성은, 나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두 칸 짜리 집에서 여덟 명이 모여 사는, 출신도 종교도 중요치 않은 사람들. 병원의 아이들, 감옥의 수감자들. 혼자 사는 노인들. 축구를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배척당해 벌써부터 홀로 틀어박힌, 그러나 관심을 갈망하는 열두살짜리 소년. 한번도 연극을 보러간 적 없는 변두리의 청소년들. 일자리 하나 없는 외진 마을에 사는 사람들. 맥도날드에서 한 명이 감자튀김 값을 내지 않았다고 서로 치고 받고 싸우고 욕하는 판자촌의 어린 보스들. 그들을 마주칠 때 당신은 보통 어떻게 하는가 ? 고개를 돌리고, 웃고, « 또 시작이군 ! » 류의 말로 자위하고, 당신에게 중요한 다른 이야깃거리로 되돌아가겠지.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 세계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을 관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될 것이다. » 모두 테라스로 ! 라는 강령에 응답한 모든 이들이 저 사람들과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함께 나누기로 결심한다면… 이미 얼마간 세상은 훨씬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나의 자유 (Ma liberté)

나는 주말마다 각종 파티를 벌이고 거기 참석하는 무리에 동참하는 일이 대체 어떤 점에서 자유의 표식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자유는, 과소비주의로 귀결되는 길과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다. 집, 자동차, 커다란 스크린, 태양 아래로의 바캉스, 쇼핑- 이런 것들과는 다른 지평을 갖는 것.

나의 자유는 내가 원하는 때에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 나의 하루를 천편일률로 환원시키지 않을 그런 직업을 갖는 것이다.

나의 자유는 내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그곳을 훼손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음을 아는 데 놓여있다. 나의 자유는 밤하늘에 아직도 별들이 수놓인 어딘가에 사는 자유. 그것은 길을 따라 나의 도시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자유다.

나의 자유는 날마다 더 큰 결핍과 욕구를 낳을 뿐인 소비의 쾌락에 반대되는 다른 모든 것을 즐길 줄 알고, 또 그것으로 충만함을 느끼는 일이다. 나의 자유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돌보려 애쓰는 마음이다. « 우리가 지나가는 동안 무언가가 바뀌었노라고, 축제가 끝난 뒤에 쓸 수 있도록. » (끌로드 르메즐)

나의 축제 (Ma fête)

나의 축제는 스펙터클의 산업을 벗어난다. 내가 작은 콘서트홀을 응원할 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연주한 음악가의 모자 속에 지폐 한 장을 놓을 때, 창고에 지어진 시골의 작은 극장들과 비영리 문화 단체들을 방문할 때, 나의 축제는 열린다. 혼자 사는 노인과 하루를 보내는 일, 그것은 축제다.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고생하는 엄마에게 토요일의 무료 베이비시팅을 제공하는 일도 축제다. 낙후된 구역의 가족들과 보다 유복한 가족들 사이에 만남을 조성하는 일, 그것은 축제다.

축제란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나의 일상이 소란하고 휘황한 소비로 점철되어 있다면, 내가 스크린 없이 이야기하고 또 소비를 목적삼지 않는 행위를 즐길 때마다 나는 축제 속에 있을 것이다.

내가 우리를 퇴폐적인 자본주의자라 공격하는 지하디스트들 편에 서고 있다고는 부디 말하지 말라. 과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가장 자본주의적인 나라들과 동일한 샘에서 난 물을 마신다 : 석유와 무기 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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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과연 앞으로 우리가 같은 테라스, 또는 같은 축제에서 서로 마주치게 될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나는 미디어가 그대에게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이미지를 입을 권리가 그대에게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론 테라스에 나가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를 안심시키는 효과밖에 없는, 그리고 분명 지하디스트들을 조금도 감화시키지 못할 (명백히 지난 1월 11일의 집회 행렬에 그들은 조금도 감화받지 못했다), 나아가 지속적으로 탄생하고 있는 또 다른 지하디스트들을 결코 멈춰세우지 못할, 하나의 상징적 저항 이상의 것으로 저 제스처를 간주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것은, 각자가 잠시라도 자기만의 테라스로 나아가,그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고개 들어 바라보는 일로써 보상받아 마땅하다. 누가 알겠는가… 혹 조금 멀리, 건물 끝에 걸린 한 뙈기의 하얀 하늘 속에서, 꿈꾸어온 세상을 그가 엿볼 수 있을는지.

2015년 11월 20일
사라 루바토

추신 : 이것은 에세이이기 보다 그저 한 장의 편지에 불과하다. 이 편지는 다만 너무나 자주 그늘 뒤에 가려져 있던 것들에 빛을 비추려 하는 작은 손전등이고자 했다. 그리하여 물론, 내 좁은 빛 다발은 다른 많은 것들을 다시 그늘 속에 남겨두고 말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것들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때때로 현을 다시 가운데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을 제법 강하게 당겨야 하는 법이다.

사라 루바토 (Sarah Roubato) 는 파리와 몬트리올을 오가며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한다. 인류학자이자 언어 채집가, 포월적 글쓰기 연구가로 본인을 소개하는 그녀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말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미처 중요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에서 이탈리아 음악 용어인 a tempo rubato 를 이끌어내는데, 이 용어는 “숨겨진 템포” 를 의미하는 것으로, 악보의 강제로부터 벗어난 연주자의 자유로운 해석 및 사적인 표현력을 장려하는 음악적 지시이다.

http://www.sarahroubato.com/publiesdans/lettre-a-ma-gen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