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좀녜, 2014 루나포토페스티벌 – 달과 사진의 밤 (Lunar Photo Night)
벗어 널어놓은 잠수복들이 처녀 적 몸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쭈글쭈글한 살결을 곁에서 함께 말렸다.
닳아 해어진 살이 꼭,
고무 잠수복이 나오기 전 입었다던
얇은 속곳 같다. 옷장 안에 고이 개켜둔,
엄마 젖에 다 삭아버린 배냇저고리 같다.
사라진다는 것은, 소멸한다는 것은
먼 죽음을 향해 떠나가는 것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요람으로, 태반으로 돌아가는 것.
물결 넘실댈 때 일렁이는 옛날.
고향 노래나 한 번 불러볼까, 얘기하며 장단을 맞추는 그네들에게,
처음부터 고향은 바다였는지 모른다.
고향 노래 한 번 불러볼까.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사랑했던 얼굴들을 떠나보내고,
철마다 공들여 따온 미역도 오분자기도 소라도 떠나보내고,
날마다 그 빛깔을 달리 하는,
사는 동안 단 한 번 스쳐갈 뿐인, 단 한 번, 절절하게 또 담뿍하게
몸 섞어 부둥켜안아 서로를 받쳐주었던,
아무도 모르는,
그때 그 순간의 물살도 떠나보내고.
비밀이 되어버린 바다.
흑백으로 담긴 저 도저한 풍경에
알알이 굵은 입자들, 그 듬성한 사이마다
굵직하게 버짐 핀 삶들이 패여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칠십대의 할머니와,
먼 언덕에서 스티로폼 상자의 모양으로 할망의 위치를 알아보며 기다리는,
허허 웃는 할아버지와,
경운기에 실려 갔다 마당으로 던져지는
그 날 몫의 소담한 수확이 있는 곳.
통통거리는 잠수배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면
제 몸 잘라두고 도망간 문어의 남은 다리를 씹었고
바다를 위해, 거기 움트고 자랄 새 숨들을 위해 물질을 쉬는 날이면
뭍에 남은 돌밭을 갈았다.
한때는 일본이나 먼 함경도까지 원정을 나가기도 했던
힘세고 굳건한 여인들의 유구한 세월이
한 뙈기의 돌밭에, 한 평 바다 위로 띄워둔 작은 스티로폼 상자에,
가늘게 새어나는 숨비소리에
다 담겼다. 흑백의 사진 속에, 가을바람에,
숨어들었다.
허나 그 폭이 좁다 하여
좀녜들의 노래가 멈출 일 없다.
누가 뭐래도 그들이 돌아갈
고향은 바다이므로.
넓은 바다이므로.
무릇 사라짐이란 언제나 도처에 만연하고
세상의 모든 사진 속에 담기는 자, 담기는 풍경 모두
사라질 뿐이니.
기억할 것은 다만 그들이
존재했다, 라는 이야기.
그 어떤 노력으로도 우리가 그들을
다 헤아리지는 못했다, 라는.
그리하여 말 못할 그들의 사랑과, 비밀인 바다가
홀로 저렇게, 영원 속에
빛나고 있으리라는 이야기,
뿐이지는 않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