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망각의 전략
지난 여름, 부다페스트의 시나고그에서 무료 가이드를 해주던 한 유태인은 말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잊었노라고. 오늘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기념하지 않고, 비판하거나 반성하지 않고, 심지어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젊은이들이 허다하다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백히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 선 나라가 아닌가. 억울함을 당한 그 과거에 대해 어찌 스스로 언급을 피하고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L’Holocauste comme culture)>라는 책에서 헝가리의 문호(文豪) 임레 케르테스(Imre Kertész)는 쓴다. 끝내 자살에 이른 많은 서유럽의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들과 달리 자신이 아직껏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애초에 희망을 갖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 그에 따르면 헝가리는 2차 대전의 참상으로부터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공산주의 독재 하의 또 다른 수감 상태에 접어들었고, 자유와 해방에 대한 환영(illusion)이 그 거대한 감옥을 침범치 못했다. 반면 서유럽의 작가들에게는 그 환영이 존재했고, 꿈이 깨어지는 순간 환멸이 덮쳤고, 그 파도에 휩쓸려 끝내 그들은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헝가리의 경우, 희망의 절멸(絶滅)과 홀로코스트의 망각(妄却)은 대체 어떤 관계를 맺을까. 부다페스트의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에서 접한 정보에 따르면, 헝가리의 유태인들을 지키기 위해 당시 정부는 독일 측과 수 차례 협상을 거쳤고, 일부 유태인들을 무사히 망명시켰고, 종전을 1년 앞두고 끝내 아우슈비츠로 끌려 보낸 헝가리 유태인들의 경우 비교적 짧은 수감 기간 덕에 상당수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같은 일말의 공적이 있는 한, 또 수많은 생존자들의 아픔이 물리적으로 현전하는 한, 헝가리가 홀로코스트를 망각할 필요나 이유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마음 속에 박힌 그 의문은 내게 홀로코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의 죽음이 아니라, 홀로코스트 이후(以後)에 대해, 그 아득한 살아남음과 살아감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케르테스의 다음 문장을 발견했다:
1948년, 갑자기 독재 정부는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말하는 것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들이 정부를 불쾌하게 했으므로, 예외 없이 질식시켜버리기에 이르렀다. […] 실제로 나는 소비에트 독재 정권이 어째서 홀로코스트라는 단순한 개념 자체를 그토록 견딜 수 없어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그럴 듯한 설명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스탈린 독재가 나치 전체주의와 스스로를 동일시했던 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채 이유가 되지 못했던 것일까. 요컨대 스탈린은 그런 방식으로, 대학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제국 내부에,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희생자들을 향한 일말의 공감(sympathie)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지속적으로 거부되고 있는 데 대한 설명이 여기에 있었다. 희생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망각이고,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억이다.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학살을 위해서, 기억을 지워야 한다. 미래의 희생자인 다른 시민들이 작금의 희생자와 동일시하여 저항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망각의 전략이란 공감을 막는 것이고, 학살의 영속성과 편재를 은폐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것이 내 문제이고, 저기서 죽은 게 나라는 것을 못 보게 하는 것이다. “바다 밑에 빠져 죽은 몸은 내 몸이 아니다”라는 거짓된 믿음. 그 믿음의 밑바닥을 들추어내는 데 본 공연의 근본이 놓여있다. 불에 타 죽은 몸, 수장(水葬)되어 불어버린 사체가 곧 나임을, 감각하게 하는 것. 그 생생한 살의 기억으로써 망각에 맞서는 것. 케르테스는 망각을 일컬어 “진정한 절망”이며, “꿈이 없는 밤”이라 했다. 연극은, 계속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몸들이 귀환한다.)
2. 시(詩)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아우슈비츠 이후 시(poésie)의 불가능성을 천명했던 아도르노(Theodor Adorno)의 문장은 한국어로 종종 이렇게 번역된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 오역의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서정(抒情)’이라는 수식을 붙임으로써 발생하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후 살펴보겠지만, 통상적으로 일반적인 시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할 때는 언어의 불가능성이라는 보다 근원적인 결핍이 뒷받침된다. 이때 흔히 얘기하는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은 부수적인 이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서정시’라는 말을 앞에 두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부끄러움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있을까. 그 부끄러움 때문에, 세월호 이후 우리는 감히 일상의 소소함과 감정의 사치를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렇게 말문이 턱턱 막힐 때, 언표불가능한 것이란 무엇인가. 물 속에 잠긴 이들은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가스실에 들어간 이들 중 생존자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므로 대체 누가 무엇을 증언할 수 있겠는가. 살아 돌아온 자들은 모두 갑판 위에 있었고, 우리 중 누구도 물 밑을 알지 못하는데. 그리하여 그 죽음을 설명해 달라고, 도처에서 단식과 서명운동이 일고 아버지들은 여름 땡볕을 걷는다. 그러나 만에 하나 모든 것이 낱낱이 밝혀진다 해도, 그것은 살해의 과정에 관한 것일 뿐 물 밑의 죽음에 관한 것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물 속에 갇혀 죽은 몸들로부터 일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하여, 서정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서정시의 불가능성은 도리어 어떤 정치적인 것의 가능성을 촉구한다. 사소하고 감상적인 일상에 대해 말할 수 없으니, 그 부끄러움을 안고서, 그 부끄러움을 견디기 위해 먼저 저 사태를 제대로 응시하자는, 저것에 대한 문장을 먼저 마치자는 강령이 거기 숨어있는 것. 그러므로 서정시의 불가능성은 진정한 시의 가능성과 연결된다. 케르테스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아도르노의 저 유명한 문장을 알고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여기 약간의 뉘앙스를 더해보겠다: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오직 아우슈비츠에 관해서밖에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홀로코스트가, 세월호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결코 과거로 넘겨지지 않은 채, 영원히 현재에 속하여 우리의 응시를 요청한다. 불가능한 말들을 요청한다. 해서 케르테스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에서 도리어 이렇게 반문한다: “실제로 오늘날 홀로코스트에 대한 작가가 아닌 작가가 있는가?”
3. 홀로코스트의 영속성
“추모비 있잖은가, 모르던가? 잉, 인공 때 읍내 등기소, 거기가 전이도 등기소 건물이 있었다네. 그 등기소 건물에 반동분자라고, 이 군에서 이름 알려진 어른들 백 스무 일곱 분 갇혀 있었디야. 헌디 국군이 밀고 올라온게 쫓겨가는 마당에, 막판에 다급한게. 그 쳐죽일 놈들이 불싸질러 버렸디야.”
오태석의 <자전거>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의해 함락된 인공 치하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몰살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마을의 등기소 건물에 갇혀 있던 120여명의 남자들이 한꺼번에 산 채로 불태워진 것. 주인공 윤서기는 어린 시절 그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때는 아버지의 제삿날, 곧 온 마을의 제삿날 밤이다. 그날따라 윤서기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술을 몇 잔 걸친 뒤 자전거를 끌고 먼 길을 우회한다. 어째서 그는 그렇게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한 것일까. 그것은 물론 우선적으로 제사에의 참여를 유예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등기소 사건의 생존자인 당숙이 홀로 살아나온 것을 자책하며 연례행사처럼 사금파리로 이마를 긋는 꼴을 보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 모든 과거의 핏빛 그림자가 윤서기에게 너무나 현재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맞닥뜨리기를 유예했던 것이 비단 당숙의 자해 뿐일까. 그날 밤 윤서기의 여정은 아마도, 보기 싫은 것들을 외면하기 위해 열심히 우회했으나, 결국 그 우회의 길목마다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맨 얼굴들을 지긋지긋하게 맞닥뜨리게 된, 파열(破裂)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3년이나 걸려 돌을 골랐다는 등기소 추모비 건립 문제, 자신들처럼 살지 말라고 아이들을 앞집에 입양 보내는 문둥이 부부, 자기도 문둥이네서 입양되었을까 두려워 떨던 첫째, 첫째의 부추김으로 집을 나간 둘째, 제사상을 받으러 가다 윤서기와 마주친 귀신 한의원, 그에 따르면 자전거 탄 모습이 윤서기와 꼭 닮았다던 윤서기의 할아버지, 물 속에 박힌 자전거 안장 위에서 발견되었던 친일파 할아버지의 살해당한 몸, 승전을 알리며 자전거에 태극기를 꽂고 달려오던 황석구, 전쟁 중 고문으로 미쳐버린 마을 사람이 황석구의 다리에 죽창을 찔러 넣어 불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 발길질에 놀라 산을 뛰어 도망가던 황소, 흩어지던 소 방울 소리, 은밀한 도축, 가출한 아이를 찾아나선 문둥이와의 재회, 그를 향한 윤서기의 비난과 윽박지름, 돌연 저 멀리 타오르던 불길… 이 모든 장면들을 거쳐, 윤서기의 불길한 예감은 마침내 민낯을 드러낸다. 저 지리멸렬한 인생의 비릿함으로 온 세계는 채워져 있고, 아픔과 생채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은 채 대물림 되며, 화재와 재앙의 불씨는 이미 도처에 흩뿌려져 있고, 그 불씨를 무심히 발길질했던 자신의 전 생애가 결국 등기소에 불을 지르고 홀로 살아나온 당숙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 그 사실이 거대한 화마(火魔)처럼 윤서기를 덮치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라고 불러온 것들은 그러므로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순환 속에 있다. 세상의 무심과 외면 가운데, 멀쩡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갇혀 떼죽음 당하는 역사. 등기소 건물에서, 포위된 한 도시 안에서, 무너진 백화점에서, 전복된 기차에서, 불이 난 전철에서, 그리고 침몰한 배에서, 갇혀 죽은 몸들의 역사.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버린 사건들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문화라고 일컬어져야 할지 모른다. 선별하여 기록되고 관점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것이 역사라면, 문화는 여지없이 몸으로써 체험되고 그 체험으로써 순환되는 무언가이다. 유전이 두려워 자식마저 버리게 하는, 문둥병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몸에 담지된, 재앙(catastrophe)의 가능성들. 외면할 수 있는 척 살아가지만, 막상 마주해보면 내 살처럼 익숙한 그것들. 그래서 케르테스는 “문화로서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고통의 보편화와 통속화, 체념과 무관심, 심지어 권태가 시대를 뒤덮고 있고, 제도화된 살해는 일종의 태도가 되었으며, 그 무감한 태도가 바로 시대의 질병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여 우리 앞에 닥친 것은 문화로서의 세월호, 문화로서의 자전거에 다름 아니다. 이를 냉철하게 응시한 김현탁 연출은 이번에도 뼈아픈 언어유희를 만들어낸다. 자전거의 영문(Bicycle)을 비틀어, 우리네 몸과 체험 속에 새겨져 쳇바퀴 돌듯 끝없는 안녕을 고하게 하는 시대의 문화, 그 영원한 죽음의 사이클(Bye cycle)을 연극으로써, 오직 연극으로써 폭로하기 위해.
4. 트라우마: 소용돌이로서의 기원
그러나 본격적으로 연출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나도 윤서기를 따라 잠깐 우회해보도록 하겠다. 오태석의 원작 <자전거>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사실 윤서기는 그날 밤의 기억을 잃은 상태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그 밤 이후, 그는 꼬박 42일을 자리에 누워 두문불출하였고, 이제 다시 출근한 면사무소에 결근계를 제출해야 하는 참이다. 윤서기가 쓴 결근계 초안은 이러하다: “길가에 암장된 처녀가 야밤에 길 가는 사람 불러 잡는 바람에 졸도, 이후 경기로 눕게 되어 42일간 출근이 불가하였기로 결근계를 제출하나이다.” 처녀 귀신을 만나 쓰러져 앓았다는 저 허무맹랑한 사유서는 (사실은 그 자체로 진실에 가장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잃어버린 그 날의 진실을 찾도록, 그를 통해 진짜 결근계를 완성하도록 윤서기를 종용한다. 해서 그가 자전거를 끌고 그 밤의 도정을 다시 밟아가며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원작은 진행된다. 그 기억들은 물론 분명하지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윤서기는 그저 자신의 몸과 감각이 이끄는 대로 그 파편들을 펼칠 뿐이다. 조각이 맞지 않으면 다시 맞춰볼 뿐. 그렇게 기억은 하염없이 실시간으로 변형된다. 그러다 최후의 순간 압도적인 불의 이미지가 덮치고, 등기소 화재와 문둥이네 방화가 겹치고, 불지른 당숙과 거위집 처녀와 윤서기 자신의 울부짖음이 하나로 타올라간다. 아마도 그 불 앞에서 윤서기는 기절했을 것이겠지만, 그 사건을 잊었었고, 감각의 되새김질은 그 불을 다시 불러와 새롭게 더 처절하게 그를 태웠다. 그러나 여전히 묻고 싶다. 그 사건은 정말로 존재했을까. 불이라는 알레고리는 충분한 답인가. 원작의 끝에서 윤서기의 빈 결근계는 허망히 보고한다: “지난 달 8일 야근 후 귀가 도중, 신틀매 골챙이에서 야반 질주해 온 3년생 한우에 받쳐 의식불명. 익일 의식은 되찾았으나 이후 고열과 의식이 흐려지는 심한 두통으로 인하여 출근이 불가하였기로 결근계를 제출하나이다. 본인 윤진.”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초기 트라우마 이론에 따르면, 사건을 처음 겪는 당시에는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는다. 주체는 그 사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으며, 그로써 기억은 억압된다. 그러다 이후 그 사건을 연상시킬만한, 혹은 유사한 무게의 두려움을 주는 무언가가 발생했을 때, 돌연 과거의 사건은 트라우마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애초의 사건 자체는 일어났다고도,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동공(洞空) 같은 것이다. 주체는 그 사건을 결코 경험한 바대로 사유할 수 없으며, 완벽하게 복원하여 기억할 수 없다.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샘으로서의 기원(origine-source)이 아닌 소용돌이로서의 기원(origine-tourbillon)에 대해 말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을 언급하며 디디-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은 다음과 같이 쓴다:
순수한 사건이란 없다(Il n’y a pas d’événement pur). 그러므로 그것에 대한 정확한 기억을 찾으려 애쓰지 말자.
어쩌면 망각이란 그런 것일지 모른다. 실체가 있는 무언가를 잊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디부터 비실체였던 무언가가, 여전히 비실체로 남아있는 것. 잃은 것이 아니라, 이미 없던 것. 윤서기가 찾는 혼절의 원인이 바로 그러하다. 최후의 불마저 온전한 해소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서 디디-위베르만은 사건 자체의 정확한 복원을 포기하자고 쓴 것이다. 그렇지만 그 복원이 비록 가능하지 않다 하여도, 아니 오히려 가능하지 않은 까닭에, 주체는 자꾸만 트라우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처음부터 그것이 주체가 반응할 수 없는 사건이었던 탓에, 그 엄청난 강렬함 때문에, 내 것 아닌 경험으로, 고통보다 큰 이끌림으로, 우리는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윤서기처럼, 자전거 바퀴처럼.
5. 언표불가능성과 몸
사실 디디-위베르만 역시 사건으로의 이 같은 귀환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입장은, 순수한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하리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자는 것, 그리하여 선명한 기억을 찾아 사유하거나 언어를 더듬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소용돌이에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몸의 움직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의지적인 기억의 이미지(image réminiscente)를, 그것의 힘 자체를 정직하게 따라가는 것.” 본디 트라우마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언어화되지 못한다는 데 놓여있고, 나아가 그것이 언어보다 앞선, 언어보다 진실한, 몸에 새겨져 있다는 데 놓여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트라우마적인 사건 및 체험을 묘사할 수 없으되, 단지 어떤 몸짓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디디-위베르만은 쓴다. 몸에 새겨진 기억을 따라서, 그때의 몸짓과 동일한 운동감각적 인상들(les même impressions kinesthésiques)을 낳는, 또 다른 몸짓과 해석들을 더할 뿐인 것. 여덟 살에 홀로코스트를 겪은 작가 아하론 아펠펠트(Aharon Appelfeld)의 한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가슴 속에 남아있던 장소들, 날짜들, 이름들은 대부분 잊혀졌으나, 나는 내 몸 전체로부터 그 날들을 감각한다. 비가 오거나, 날이 춥거나, 때로 거친 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즉시 나는 게토로, 수용소로, 오랫동안 내가 몸을 숨겼던 그 숲 속으로 되돌아간다. 확인컨대 기억의 뿌리는 몸 속 깊은 곳에 박혀있음이 틀림없다. 나를 먼 곳으로, 혹은 내 안으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썩어가는 짚단의 냄새나 한 마리 새의 울음소리 정도면 충분하다. 내 안으로, 라고 내가 쓴 까닭은, 저 처절한 기억의 흔적들을 명명할 적절한 단어를 내가 아직 찾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즉 저 처절한 기억의 흔적들은 그의 몸 안에, 명명되지 못하고 언표되지 못한 채 뿌리 박혀 있다. 해서 케르테스나 아펠펠트를 비롯한 홀로코스트 생존작가들의 글쓰기는 대개 감각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그들의 글쓰기는 지극히 몸과 가까이 있다. 문장들은 몸의 리듬을 따르며, 그 리듬은 파편적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커다란 음률 속에 통합되기를 거부한다. 기록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고, 시간 자체의 제약으로부터도 벗어난다. 몸이 감각하고 기억하는 것들은 영원히 현재적이다. 현재적인 고통, 현재적인 트라우마. 오태석의 <자전거> 역시 그 같은 글쓰기를 표방한다. 그리고 그것이 살아 숨쉬는 살의 무대와 만날 때, 특별히 김현탁 연출이 무대 위에 써 내려갈 새로운 글쓰기(écriture du plateau) 와 만날 때에는 더욱 더 그러하리라. 말하자면 보다 즉물적이고, 보다 해체적이고, 보다 감각적이며, 보다 조형적일 것. 더 멀리, 더 극단으로, 그리하여 더 가깝게 근원으로 가기 위해서.
6. 새로운 춤을 위하여
그러나 본격적으로 텍스트로서의 <자전거>가 아닌 공연으로서의 <자전거>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한 차례의 우회를 더 허용해주기 바란다. 앞서 나는 트라우마의 근본에 언표불가능성이 놓여있다고 썼다. 라캉(Jacques Lacan)에게 가면 이는 구조적으로 사유된다. 그는 상상계와 상징계, 실재계의 구조를 나누고, 트라우마를 실재계, 곧 포착할 수 없는 바깥과 연결 짓는다. 그에게 있어 “실재는 트라우마적”이며, “실재와의 우연한 만남”인 트라우마는 우리 삶 속에 영원히 설명될 수 없는 생채기를 내고 달아나는 아찔한 섬광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것이 구조적으로 상징계, 곧 우리가 언어를 도구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와 단절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캉은 상징계의 질서 및 언어 속에 결코 포섭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위치를 지정함으로써 그것의 언표불가능성을 설명한다. 한편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에게 가면 언표불가능성 문제는 단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과 연계된다. 무언가를 근본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문장화를 억압하는 체제의 질서가 가로막혀지는 것. 그에 따르면 주어진 한 정치적 질서 내에는 셈해지는 것과 셈해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후자, 즉 질서로부터 배제된 것들의 말은 언어로서 힘을 갖지 못하고 단지 의미 없는 웅얼거림이나 신음으로 취급된다. 요컨대 말을 박탈하는 어떤 사회적 정황이 주어진다는 의미로, 가령 홀로코스트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배제했던 전체주의 언어의 폭력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경우 한 사건을 트라우마적인 것으로, 곧 언표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건을 배제하는 질서의 권력으로부터 기인한다. 말하자면 세월호의 침몰 자체도 명백히 트라우마지만, 사후적인 침묵의 강요와 철저한 배제가 더욱, 세월호라는 이름을 트라우마적으로 만든다. 케르테스는 이 같은 상황을 단 하나의 강제되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춰야만 하는 순간에 비유한다. 우리는 춤을 추면서 그 리듬을 따라가거나 놓칠 수 있을 뿐, 그 속에서 다른 리듬에 맞춰 춤추거나 귀를 막아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 리듬을 끊고, 완전히 새로운 춤판을 열어야 하리라. 춤추는 몸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신음과 비명이 말이 되게 하기 위해서. 랑시에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새로운 감성의 분할(partage du sensible)을 행해야 하는 것. 랑시에르가 볼 때 한 질서 내에서 언어를 박탈당한 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까닭에, 그 능력으로 하여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엶으로써 언어를 회복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이고, 미학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의 경우는 조금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희생자가 주어진 상황 속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자신이 당한 고통을 증언할 수 없는 분쟁(différend)의 상황을 논하면서, 희생자의 침묵 자체가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쓴다. 예컨대 침묵은 트라우마 자체를 재현할 수는 없지만, 언표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현시할 수 있다. 비교하자면 랑시에르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여 박탈된 말을 언표가능한 것으로 만들자는 것이고, 리오타르는 침묵이라는 적극적인 에너지로써 그 부당한 상황 자체를 증언하자는 것이다. 곧 그 어떤 새로운 질서 속에도 가두어질 수 없는 강렬함(intensité)과, 모든 말들의 영원한 바깥인 침묵의 에너지로 맞서자는 것. 그리고 나는 두 대안의 사이에서 많은 동시대 연극들이 진동하는 것을 본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언표불가능하던 것들을 의미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형식 속에서마저 포섭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남아 잔존하다가 때로 섬광처럼 난입할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그 둘의 공존이 동시대 무대 위에서 또 하나의 리듬을 점유하는 것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케르테스가 주장하듯, 홀로코스트 이전의 언어가 아닌 홀로코스트 이후의 언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일 터, 그것은 일종의 “무조언어(langue atonale)”로서, 기존 조성 및 리듬의 관례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폭로하고, “새로움 춤”의 난입을 허용한다.
7. 카스텔루치와 성상파괴연극
이탈리아 연출가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는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연극을 “성상파괴연극(théâtre iconoclaste)”이라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성상(icône)은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어 성스럽다 일컬어진 어떤 이미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성상 자체가 변질될 수 없는 진리나 실재(réel)를 담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존 질서 속에서 셈해진 그 이미지들을 파괴하는 것, 가능하리라고 상정된 재현에 반(反)하는 것이 바로 성상파괴연극의 본령이다. 그러나 이때 파괴는 결코 무의미하고 폭력적일 뿐인 난장(亂場)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성상파괴는 단지 흰 벽을 제시하는 것도, 더 이상 무엇인지 알아볼 수조차 없는 무언가의 파괴로 수렴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앞서 있었던” 이미지와 힘을 겨루는, 그러한 파괴의 흔적을 지닌,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카스텔루치는 성상파괴가 “성상 없음”이나 “성상 아님”을 드러내는 단순한 부정성이 아니라, “저 성상을 파괴함”이라는 조형적이고 시각적인 행위의 긍정성을 내포한다고 쓴다. 형식의 절멸이 아닌, 진정한 변형(transfiguration)을 말하는 것. 기존의 것을 부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이 같은 긍정성은 랑시에르가 표방하는 예술의 정치적 힘에 가까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카스텔루치는 진정한 성상파괴연극이란 자기 자신에게까지 파괴의 칼날을 드리워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리오타르와 유사하게, 그 새로운 세계에서마저 축출당할 어떤 것, 그리고 그것의 가장 우연적이고 진실한 난입(亂入)을 상정한다:
연극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은, 진정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의 이미지들을 망가뜨림으로써 그 힘을 길어낼 필요가 있다: 이때 망가지는 이미지들은 도리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고 훌륭한 것들일진대, 작품은 기타 다른 전쟁의 손길이 그것들을 망가뜨려버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다. […] 그 놀라운 자기 파괴의 힘을 신뢰할 때, 역사의 눈으로부터 삭제되었던 저 파편들은 참된 현상학적 감각으로써 새롭게 침입할 수 있다.
성상파괴연극은 그렇듯 자신의 귀한 일부를 파괴함으로써 그것에게 탈-시간성(a-temporalité)을 부여하고, 그것을 존귀한 무덤으로, 혹은 새로운 요람으로 되돌린다. 카스텔루치에게 연극이란 언제나 죽음 이후, 혹은 말이 없던 유년과 연계된 개념이었다. 그곳에는 각종 우연과 아름다움, 물질들, 또는 물질에의 공포가 잔존한다. 그리고 이때 연극 속으로 난입, 귀환하는 것은 바로 “몸”이며, “가장 격동적인 살의 리얼리티”에 다름 아니다. 언어의 바깥에 버려졌던 것, 셈해지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몸”이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저 “살의 연극”을 통해 외설적이고 노골적인 몸과의 화합을 체험한다. 소통이라는 것은 도리어 가능한 한 적게 할수록 즐겁다고 카스텔루치는 쓴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소통가능성조차 오직 살로부터, 물질로부터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본인의 책 제목에서처럼, 그는 그렇듯 “물질의 순례자(pèlerin de la matière)”로서 고독한 성상파괴연극에 살들을 새기고 있다.
8. 김현탁 연극론: 해체의 의미
고백하기를, 김현탁 연출은 난독증(難讀症)을 앓고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일 자체에 곤란을 겪는 1차적인 증상은 물론 아니지만, 본인도 모르게 말들의 무덤 사이에서 자꾸만 길을 잃고, 쓰여진 문장들의 바깥으로, 일찍이 작가들이 폐기했던 머나먼 벼랑으로, 생각이 널을 뛰어 흩어지는 것을 어쩌지 못하노라고. 자기 안의 이미지가 너무 많아서, 그 강렬한 감각들이 툭툭 불거져 나와, 그 어떤 이야기도 타인의 것으로서 얌전히 경청되지 않고, 자신의 시선으로, 오직 자신의 것으로 삼켜 소화하게 되는 까닭에, 마치 위장병을 앓는 것처럼 그는 늘 고통 받고 있을 것이다. 그 같은 창작의 고통에 대해 카스텔루치는 이렇게 썼다:
창작의 첫 행위(acte)는 의지(volonté)의 행위가 아닌, 자신의 퇴화 속으로 침체되는 것이다. 바로 이를 통해서만이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를 둘러싼 힘들을 이해하게 된다.
저 문장에 따르면 창작은 미래를 향한 사명이기 이전에 과거로의 침잠이다. 적어도 어떤 예술가들에게는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의 우리가 바라보고 이해하듯이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어느덧 성숙하여 어른의 눈을 가져버린 우리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저 찬란한 유년 속에 그들은 머물러 있고, 그 곳에는 가장 고통스런 세계의 비밀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비밀을 우리에게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메시지를 전하려는 얄팍한 의지의 행위가 그들의 창작에 굴레를 씌우지 못하는 까닭이다. 김현탁 연출은 연극을 만드는 동안 관객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저 스스로 본인 연극의 제1관객이 되어, 소용돌이 같은 자신의 근원을 더듬어갈 뿐. 그 소용돌이가 기어이 현재를, 미래를 덮치고 마는 것은 그의 의지 너머의 일이다. (그러나 또한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케르테스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아우슈비츠 이후 행복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로 바꾸어 논하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불행이 아우슈비츠로부터 온 것인지, 혹은 그 불행이 그를 아우슈비츠로 데려갔던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케르테스에 따르면 우리의 불행은 홀로코스트라는 사건 때문에, 그에 대한 참회의 억눌림으로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불행의 이유는 삶의 근원에서부터 존재했고, 우리의 무감과 비인간성으로 하여 그 불행은 영속될 것이며, 바로 그 불행 자체가, 우리 자신이, 홀로코스트를 불러냈었던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김현탁 연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그는 대개 동서양의 고전 희곡을 해체/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데, (혹은 한다고 말해지는데,) 이때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그것이 내세우는 특수한 드라마적 상황 너머에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가, 그 영속성이 언제나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전 텍스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 오래된 불행을 발굴하는 일은, 앞서 카스텔루치가 말했듯 “자신의 퇴화 가운데 정체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말하자면 홀로코스트라는 드라마의 표피적 흐름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것을 촉발했던, 나아가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끝없이 불러내는 “나 자신의 불행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 하여 내 발이 멈칫거리는 자리, 문장과 문장 사이 공백들 속에서 내가 걸려 넘어지는 그 곳, 거기서부터 김현탁의 연극은 시작된다.
그리고 언제나 서사보다 몸이, 몸의 감각이 먼저 그 자리를 점유한다. (그 곳은 사유가 걸려 넘어지는 곳이 아니라 감각이 걸려 넘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서 밀러(Arthur Miller)원작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김현탁 연출이 궁금했던 것은 원작에 나와있지 않은, 그러나 그 어느 장면보다 강렬했으리라고 상상되는 윌리의 마지막 순간이다. 평생의 출장 길을 동행했던 그 차를 몰고, 이제는 자신을 혐오할 뿐인 장남 비프에게 보험금을 물려주기 위해 죽음으로 달려가는 그 순간. 비릿한 전 생애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그 길의 감각은 과연 그에게 얼마마한 에너지였을까. 그 에너지를 공간화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몸으로써 공감될 수 있다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미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촉발되고, 최후의 순간까지 열렬히, 그 자리를 배회한다. 또 가령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그는 또 한 번 행간을 넘어 누구도 보지 못한 한 순간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바로 꼬마 햄릿이 엄마와 삼촌의 정사(情事)를 목격하는 순간이다. 모든 비극이 집약되고 응축되어 터질 듯한 감각의 순간. 그 순간의 이미지가 그로 하여금 햄릿 역할에 말이 서툰 어린아이를 캐스팅하게 하고, 그 작은 새 같은 몸을 성인 오필리어가 껴안고 뒹굴도록, 바닥에 앉은 거트루드가 무심히 담배를 피우며 발끝으로 아이의 머리를 툭툭 치도록, 어린 레어티스와 어린 햄릿이 장난감 칼로 전투를 벌이도록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김현탁 연출이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친히 길어내 온 이미지들이며, 보다 노골적으로는 현재의 고통 받고 소외 받는 자신의 연극 자체를 뜨레쁠레프의 고독에 빗댄 <갈매기>나, 하녀들의 처절한 삶에 빗댄 <하녀들> 등의 공연이 있었다.)
그러나 항간의 오해처럼, 그렇다고 해서 김현탁 연출이 전체 드라마를 무시하거나, 단지 피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원작의 파편들을 누구보다 깊게 읽는데, 다만 그에게는 처음부터 원작이 파편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특별할 뿐이다.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운, 순간의 파편들. 그것들이 모여 또 다른 퍼즐을 이루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다. 그는 우선, 마치 그 파편들 속에서 소멸해버릴 듯 온 마음을 다해 행간을 읽고 그 뼈아픈 감각에 빠져든다. 그랬다가 하나의 컨셉이 잡히고 나면 드라마 전체를 다시 조율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김현탁 연출이 기타 어떤 국내외 연출가들과도 다른 점은, 자신이 잡은 컨셉을 단지 원작을 조금 특별하게 읽도록 도와줄 뿐인 어떤 해석의 잣대로만 환원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특한 시각을 가진 동시대 그 어떤 급진적인 연출도, 자신만의 해석 방식이나 무대화 방식을 통해 원작을 다르게 “풀어낼” 뿐, 원작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내어 재배치하지는 않는다. 반면 김현탁 연출은 말 그대로 원작을 “해체”하는데, 모든 시간과 공간과 상황과 심리의 선점된 바들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하여 그것들을 마구 뒤섞어 완전히 새롭고도 특수한 시공을 열어젖히는, 그 곳에서 기존의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엉켜 춤을 추며 대화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해체한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원작의 드라마를 가장 존중하는, 그것이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머나먼 바다로 흘러 들게끔 하는 그만의 사랑의 방식이다. 디디-위베르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흔적의 빈약(fragilité)과 진실의 힘(puissance)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 말할 수 없는 세계의 심연, 그 언표불가능한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기억의 파편들을 파편 그대로 몽타주하여 병치시키는 일일 뿐. 그러나 그 때에 “기억이 스스로 기억에 맞서고, 결핍이 스스로 결핍에 맞서는” 아름다운 싸움이 벌어진다.
해서 <세일즈맨의 죽음>의 경우 텅 빈 무대에는 러닝머신 한 대가 비스듬히 놓이고, 그 전복된 차에 올라 윌리가 달리기를 시작할 때, 원작의 장면들이 사정없이 해체되어 앞뒤로 길 위를 달려오는 다른 차들의 전조등 불빛처럼 윌리의 눈 앞을 휙휙 날아 지나치기 시작한다. 어떤 장면은 과거의 왜곡된 기억이고, 어떤 장면은 윌리가 꿈꾸던 환상이며, 또 어떤 장면은 그가 결코 보지 못할 죽음 이후의 이미지다. 그 파편적인 장면들은 드라마의 진행이나 심리 상태의 흐름과 무관하게, 단지 감각의 변덕에 따라, 그런즉 윌리의 실재(réel)라는 견지에서는 사실상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우리를 덮쳐온다. 숨길 수 없는 윌리의 땀과 맥박, 그토록 먹먹한 뜀박질의 하염없음, 그를 돌아 치고 나가며 인물들이 그리는 나선형의 에너지, 한 순간 러닝머신의 기계음을 덮고 울려 퍼지는 린다의 노랫소리. 그러다 거리의 청소부 복장을 한 죽은 형님의 환영이 과거 대륙을 횡단하던 로먼 가(家)의 영광을 이야기하면, 인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윌리의 러닝머신에 올라타고 마차 바퀴처럼 활짝 핀 우산들을 빙그르르 돌려가며 덜컹거리는 흙 길의 감각을 표현한다. 그러다 문득 영정처럼 가방을 껴안은 비프가 앞장 서 걷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행렬은 윌리의 장례를 위한 그림이 되고, 러닝머신 위의 윌리가 그 장렬한 애도를 채 즐기기도 전에, 갑자기 비프가 앞에 놓인 마이크를 노크하듯 두드릴 때에, 인물들은 순식간에 빠져 나가고, 윌리의 정부인 프랜시스만이 남아 우산 두 개로 몸을 가린 채 찢어질 듯 웃어 젖히며, 아들에게 치정을 들켰던 생의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으로 불현듯 윌리를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프의 보디체크. 다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아버지는 사기꾼이야”라고 외치는 아들의 절규 뒤로, 저 모든 사랑했던 얼굴들의 보디체크로, 윌리의 뜀박질이 휘청, 휘청거린다.
따라서 관객은 가능하다면 김현탁의 연극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함께 “감각했으면” 좋겠다. 원작의 문장들 사이에서 그가 빠져들었던 진창에 한 번쯤 함께 빠져, 연극의 몸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숨막히는 저릿함을 느껴보았으면. 심윤경의 한 소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의 말들은 그냥 하나의 음률로,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향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고 그가 원하는 것 또한 그런 것이었다.” 말의 내용이나 의미만을 중시하여 그것들을 기존 해석의 잣대에 맞춰 풀어내려 할 때면 그 말을 둘러싼 감각의 색채들은 사그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말을 그저 하나의 소리로, 고유한 리듬을 가진 한 음률로 받아들인다면, 물질이 가져다 주는 휘황한 감각 속에서, 꿈꾸어본 적 없고 다시 말로 풀어 설명할 수도 없을 비밀을, 세상의 밑바닥에 고인 고통과 불행을 한 순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음률과 음향 속에서 갑자기 어떤 말들이, 진정 말의 힘을 되찾은 새로운 말들이, 우리를 찌르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그 칼날에, 날 선 진실에, 몸을 맡겨 울면 그뿐이지 않겠는가. 그러면 내가 조금, 비단 연극이 그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조금, 달라지지는 않겠는지. (어쩌면 세상도?)
9. 자전거(Bye Cycle)
무대 한 켠에는 십여 대의 자전거가 놓이고, 거기 앉게 될 관객들은 러닝타임 내내 (윌리가 뛰었듯) 페달을 굴리게 될 것이다. 그 자전거 바퀴의 동력으로 무대에 설치된 영사기가 돌아갈 때, 영사기의 불빛 속에 잡힐 살아 숨쉬는 이미지들이 바로 윤서기의, 우리의 잃어버린 기억이 된다. 공연은 원작의 서사를 따르지 않지만, “은폐된 트라우마의 근원 찾기”라는 원작의 큰 틀은 자전거 페달을 밟는 관객의 행위 자체에 함축된다.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하염없이 불을 밝히는 몸의 운동성 속에, 그것을 찾아야 하는 윤서기의 사적(私的) 사연 이상의 것들이, 심리적 동인(動因) 이상의 것들이 담기게 되는 것. 말하자면 형식이 내용을 대신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때 또 하나의 중요한 형식적 장치가 있으니, 바로 영사기의 불빛이 만드는 그리 크지 않은 사각의 프레임 안에, 배우들의 몸이 갇히게 되는 것이다.
왕골 돗자리로 하체만 가릴 수 있게 ‘디귿’자로 만든 농군들의 간이 뒷간이 보인다. 허연 두루마기 걸친 생전의 한의원이 목만 위 내놓고 앉아 있다. 내리 깔린 안개로 해서, 언뜻 보면 봇물에 들어앉아 머리만 내놓고 몸 씻는 듯이도 보인다.
한의원 : “불 있는가?”
윤서기 : (사방 둘러보며 자전거에서 내린다. 귀 기울인다. 이 장면에서 윤서기의 움직임에 약간 혼란이 온다. 거리와 방향에서 그러하다.)
한의원 : “불 있는가?”
윤서기 : “예?”
한의원 : “날세, 나.”
윤서기 : “뉘시유?”
사실 한국 고유의 공간 개념은 매우 특별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나의 공간”으로 경계 지어질 만한 범주는 온 자연과 우주에 걸쳐 광활하게 퍼진다. 그러나 그 광활함은 개인에게 할당된 공간이 큰 탓이 아니라, 서로가 모든 공간을 공유하는 탓에서 기인한다. 서로들 사이의 교집합이 넓은 까닭에, 공간이 무한까지 확장되는 것. 가령 마당의 감나무는 내 것이지만, 동시에 날아드는 새들의 것이기도 하여, 가을 추수 때마다 우리는 꼭 몇 개씩의 열매들을 가지 끝에 남겨두곤 하지 않던가. 그렇게 나무는 자기에게로 날아온 새들의 시공을 포함하게 되고, 결국 내 마당은 우주를 끌어안는다. 이는 비단 새 뿐만 아니라 죽은 영혼들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죽은 자들의 시공과 산 자들의 그것은 종종 겹쳐지며, 우리는 그들의 귀환을 반겨 상을 차리고, 남은 음식은 집 없는 영혼들을 위해 대문 밖에 놓아둠으로 배고픈 동물들이 허기를 채우는 일을 허한다. 오태석의 <자전거>에서 제삿날 윤서기가 죽은 한의원의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러므로 조금도 이질적이지 않다. 이질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토록 넓은 공간 개념을 영유하던 우리네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 어딘가 닫힌 공간에 갇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지나 않겠는지. 그 죽음의 반복으로써 이루어진 우리의 문화 자체가, 기이할 뿐. 자연과 우주마저 끌어안던 광활함을 저기 두고 밀폐된 틀 속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 그 몸들의 기억을 불러오기 위해 배우들은 영사기의 프레임 안에 스스로 갇힌다. 저마다 프레임 속에 제대로 담기려, 싸우듯 몸부림치며. 낡은 필름 속 사람들처럼, 때로는 그 움직임이 뚝뚝 끊기며. 그리고 그 모든 몸의 부대낌을 눈 앞에서 마주할 때, 관객은 영상 속의 복원된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사기 프레임 바깥으로 그럼에도 자꾸만 삐져나가는, 불편한 “살-덩어리”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여 영사기의 빛이 비치는 그 좁은 공간을 공연이 상정한 것은, 거기 결코 담길 수 없는 바깥을 도리어 다시 상정하기 위함이며, 그 바깥의 엄청난 광활함이, 버려짐으로써 다시 공연 속으로, 난입하기를 기대함이다.
그렇다면 영사기의 필름 속에서 관객은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몸들을 만나게 될까.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에는 한국전쟁 당시 양측 군대의 기습에 시달렸던 한 산속 마을의 이야기가 나온다. 깜깜한 밤, 전등도 켜지 못한 좁은 방에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덜컥 문이 열리고 눈도 뜰 수 없게 환한 전짓불이 눈앞에 드리워지는 이야기. 눈부신 전짓불 탓에 뒤에 숨은 어둠의 사람들이 국군인지 인민군인지 알 수 없으며, 그래서 매번 내가 누구의 편인지 말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던 절망에 대한 이야기다. 케르테스는 전쟁이 끝난 뒤 헝가리의 유태인으로 살아가면서, 편의를 위해 익명성 속에 몸을 숨겼다가 어느 순간 그 익명이 벗겨질 때마다 또 어떤 가면을 쓰고 연기를 이어갈지 차마 알 수 없었던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 시절 나는 종종 정체성의 곤란을 겪었다: 때때로 나는 들이대는 총구 앞에서, 익명을 대신할 그 어떤 비존재(inexistence)를 택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들이대는 총구라든지 눈을 멀게 하는 전짓불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차마 말하지 못하고 다시 숱한 비존재의 가면을 찾아 걸치는 것. 그마저도 원활치 못해 헤매고 또 헤매는 것. 그것은 아마도 나의 정체성이 저 세계의 질서 밖으로 내어 쫓겼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모두, 마치 그 어떤 트라우마처럼, 스스로 언표불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케르테스가 말하듯 익명의 가면쓰기는 우리에게 “연기이기보다 생존의 기술”이며, 연극이기보다 삶 자체다. 하여 본 공연은 살아가기 위해 익명이 된 이 시대의 비존재들을 영사기의 프레임 안으로 끌어 들인다. 살-덩어리의 감각으로 치환된, 나의 비존재들. 하여 망각의 행사인 추모비 제막식에서는 비석을 두른 천 너머에서 웅크린 거지가 튀어나오고, 시대의 문둥병인 성형술로 인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기에 이르고, 여지없이 각종 부정과 비리가 난무하고, 거기 또 줄을 대기 위해 모두들 미친 듯이 달려가고, 유명 대중 가요에 맞춰 추는 춤은 절름발이 신세의 황석구 같은, 기형의 몸들을 닮았고, 가출한 아이가 사창가에서 몸을 팔 때, 노동하는 남자들은 차례를 기다리다 무료함을 달래려 탱고 춤을 춘다. 그토록 아름답고 처절한, 너와 나의 몸-살들. 이때 각 장면들은 얼핏 제각각인 해체적 알레고리에 불과해 보일지 모르나, 그 모든 익명의 파편들 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수많은 감각의 절절한 심연들이 뿌리 내려져 있다. 케르테스는 비엔나의 학회에 가려다 여권 문제로 발이 묶여 한나절을 낭비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집단수용소의 시간, 그리고 독재 정권 하의 수감 시간이 동시대 헝가리에서 이번에는 “출국의 시간”으로 축소되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오늘의 옷을 걸치고 펼쳐지는 저 장면들은 모두 지긋지긋하게 반복되고 교묘하게 변형되는 “자전거”들의 동시대적 축소판에 다름 아니다. 하여 세상으로부터 배제 당하고 죽임 당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또 다른 살해의 도구로 이용 당하는, 우리들의 처절한 현주소를, 그 모든 참사의 축소판 가운데서 무대 위의 몸들이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직시하기 위해 관객이 직접 자전거를 굴려야 한다는 사실이며,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 전적으로 그의 참여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페달 밟기를 멈추면 그만큼 영사기의 빛은 어두워지고, 망각의 어둠은 이내 무대를 잠식할 것이다. 그러므로 끝없이 수고를 감내하는 관객의 몸이, 본 공연에서는 진정 물리적으로 요청된다. 하여 자전거를 굴리는 그 직접적인 고통이,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관객들의 간접적 고통이, 기묘한 육체적 공감으로써 무대와 객석을 아우를 것이다. 모두 다르지만, 같은 고통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축소판들. 그러다 혹 누군가는 그 어느 가여운 유태인을 이국의 거리에서 일별한 케르테스처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여워라, 속임 당하고, 조롱 당하고, 배신 당한 헝가리인이여. 가여워라, 동유럽이여. 마치 거기 속하지 않은 자처럼, 연민으로 나는 말했네.
무대와 자전거 사이, 그리고 자전거와 객석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가 있고, 그것이 혹 어떤 관객들에게는 모종의 안도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치 거기 속하지 않은 자처럼”이라는 케르테스의 저 표현 속에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거기 속해 있음을 알고 있는 자의, 숨길 수 없는 탄식과 절망이 배어 있다. 하여 그 어떤 물리적인 거리가 가로막혀 있다 해도, 자전거를 굴리는 몸들은 무대 위의 살들과 하나가 되고, 객석의 몸들은 저 둘의 감각을 끌어안고 말리라. 그리하여 결국, 언제나 뒤늦게 엄습하고 마는 것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와 치욕뿐이더라는, 케르테스의 경험을 우리는 나누게 될 것이다. 케르테스는 그 최후의 굴욕적 인식이 바로 “동쪽 나라의 집단수용소적 사회(société concentrationnaire de l’Est)”가 품고 있는 비밀이라고 썼다. 아마도 그는 동유럽에 대해 말하고 싶었겠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더 먼 동쪽 끝에는 대한민국이 있지 않던가. 그 동쪽 나라 한국은 집단수용소의 사회보다 더 절망적인, “합동분향소의 사회”라고도 불린다. 집단수용소에는 그나마 일말의 생존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합동분향소에는 죽음뿐이다. 불타는 건물에서, 침몰한 배에서 갇혀 죽은 몸들이, 그 장례에서마저 한 뼘 액자 속 익명의 얼굴들로 나열된 채 숨 막히게 갇혀 있는 곳. 그것이 결국 우리를 치욕스럽게 하고 분노하게 할 때, 페달을 굴리던 온 몸을 타고 감각의 전율은 흘러가리라.
10. 윤리와 미학
랑시에르는 <해방된 관객>에서 예술을 무지한 스승(maître ignorant)에, 관객을 그와 동등한 위치에 놓인 제자에 빗대어 설명한다. 결국 지식의 위계 자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예술은 무언가를 가르칠 수 없고, 관객이 스스로 시적 번역 작업(travail poétique de traduction)을 통해 결국에는 행함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불을 밝히고, 해서 가려진 어둠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것. 저 영사기의 불빛이 비추는 것들을 응시하고, 스스로 감각하고 사유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본 공연 속에서 진정 해방된 관객의 몸짓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리고 이때 주체가 된 관객은, 오직 본인만의 시적 번역 작업을 통해서, 반드시 “끝까지 가보기를” 당부드린다. 케르테스가 읍소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세상이 부조리하다, 도무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막연한 실패가 아니라 “역사와의 실존적 대면을 시도해본 뒤에 맞는 존재론적인 실패”가 필요하다. 적어도 생애 한 번, 지난 세기에 일어난 일들을 상상해 보고, 그 일을 겪은 사람들, 곧 우리 자신과 동일시해보라고 케르테스는 쓴다. 그에 따르면 그렇게 끝까지 가보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저 시대로부터 단 한 가지를 이해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가지, 곧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했다고. 그 중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안에 자리한 저 비극의 끝없는 반복에 대한 잠재임을 발견했노라고. 이해불가능한 것은 역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이제 알겠노라고. 그리고 그것이 본 공연 속에 담지된 최소한의 윤리라면 윤리일 것. 그 최소한의 윤리를 위해서, 그러나 공연은 늘, 꿋꿋이 미학의 자리에 설 것이기도 하다. 디디-위베르만이 말하듯 기억에 관한 윤리적 문제는 형식에 관한 미학적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카스텔루치는 이렇게 단언한다:
윤리를 낳는 것은 미학이다. […] 나에게 있어 판단의 유일한 기준은 아름다움이다. 만일 무언가가 너를 네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네가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을 곳으로 데려간다면 그것은 너에게 있어, 또 나에게 있어, 아름답다.
그리고 이는 김현탁 연출에게 있어서도 너무나 자명한 일. 진실로 윤리적이기 위해 먼저 미적일 것. 내용을 강요하지 않는, 형식의 아름다움 자체일 것. 말이 아니라 감각일 것. 왜냐하면, 그간 숱하게 배제되었던 것들이 언제나 후자였기 때문이다. 하여 자전거라는 죽음의 문화 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속이는 말과 서사들이 난무할 때, 진정한 윤리를 위하여 우리 모두 끝까지 바퀴를 굴리고 굴려서, 아름다움을, 다만 아름다움을 찾으리라는 역설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극단 성북동비둘기, 자전거, 2014.10 – 드라마터그의 글